프랑스는 1900년 이후 가장 뜨거운 4, 5월을 맞았다.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파리는 7, 8월 휴가철을 연상케 한다. 이러니 북적대는 거리 풍경에 반해 극장가는 예년 같은 시기에 비해 유난히 한산할 수밖에 없다. 극장을 찾은 관객은 벌써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나 <토르: 천둥의 신> 같은 여름용 블록버스터영화들을 찾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소규모 프랑스영화가 있다. 셀린 샤마 감독의 <톰보이>(Tomboy)다.
셀린 샤마는 2007년에 첫 장편 <워터 릴리스>(Naissance des pieuvres)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진출했고, 세자르영화제 신인감독상과 루이 뒬릭상을 수상하며 영화팬과 비평가들의 환호를 받았던 1979년생 감독이다. 그녀는 올해 ‘급하게, 그리고 저렴하게’ 찍은 두 번째 장편 <톰보이>로 다시 한번 그녀의 재능을 확인했다. 셀린 샤마는 지난해 초에 불현듯 생각난 아이디어를 짧은 기간에 발전시켜 4월에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8월에는 제한된 로케이션(가족의 아파트와 아파트를 둘러싼 야외공간)에서 디지털카메라 캐논 7D만을 사용해 20회차의 촬영을 끝냈다. 그렇게 완성된 <톰보이>는 4월20일 프랑스 개봉 당시 겨우 77개의 프린트로 시작했지만 5월10일까지 15만7901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전국 128개의 프린트로 늘려 연장 상영될 예정이다.
<톰보이>는 새로운 동네로 이사한 10살 난 소녀 로르의 이야기다. 짧은 머리에 남자아이 같은 외모 때문에 새로운 동네에서 만난 첫 번째 친구 리자는 그녀를 남자아이로 착각하고, 로르는 얼떨결에 자신을 미카엘이라고 소개해버린다. 그때부터 그녀는 로르/미카엘의 이중 역할극을 시작하고, 결국 리자는 미카엘을 사랑하게 된다. 셀린 샤마의 전작 <워터 릴리스>가 사춘기 소녀들의 우정, 사랑, 섹스를 둘러싼 성장통을 다루었다면 <톰보이>는 갓 사춘기에 접어든 엉뚱한 소녀의 해프닝을 다룬다. 하지만 셀린 샤마는 성역할을 단정하지는 않는다. <워터 릴리스>의 주인공이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는 여자를 레즈비언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듯, <톰보이> 역시 미카엘의 삶을 살아가는 로르를 미래의 복장도착자나 트랜스젠더로 설명하려 하진 않는다. <톰보이>는 성정체성에 관련한 복잡한 정신분석극이 아니라 로르/미카엘의 행동을 따라가는 흥겨운 역할극에 가까운 영화다.
반항아, 천재 아닌 평범한 아이들 얘기
셀린 샤마 감독 (이 인터뷰는 프랑스 영화 사이트 ‘알로시네’에서 진행한 내용을 참고한 것입니다.)
-로르/미카엘 역을 맡은 조에는 신체적으로나 행동으로나 주어진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캐스팅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캐스팅하는 데 3주가 걸렸다. 첫 작품은 길거리 캐스팅을 했는데 이번에는 연기학원으로 찾아갔다. 빨리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하느라 시간이 없었다. 사실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아역 연기자들을 약간 경계하는 편이다. 그러나 캐스팅 두 번째 날 조에를 본 순간, 곧바로 결정했다. 영화에 출연하는 또래의 아이들은 조에의 진짜 친구들이고, 영화의 배경이 된 동네는 조에가 진짜로 사는 곳이다.
-<톰보이>에서는 부모들이 부드럽게 묘사된다. =사실 아이들을 다루는 영화를 보면 대게, 반항아나 거친 아이들이 많이 나오잖나. 그렇지 않으면 아주 똑똑한 천재들이거나. 나는 그저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아이들을 다루고 싶었다. 또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로르의 역할극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집에서도 충분히 행복하다.
-캐논 7D로 촬영했다. =미학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것이다. 나는 이 카메라가 잡아내는 색깔과 피사계 심도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