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이직 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실제 이직률이 아니라) 직업군이 교사라는 조사 결과를 본 기억이 난다. 지루함, 숨막힘, 비전 없음 등등이 그 이유였던 것 같다. 당시 그 보도를 보고 ‘칼퇴근에, 방학에, 연금에… 배가 불렀다’, ‘그 좋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다니 세상 물정 모르는 모양이다’, ‘그나마 그만큼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직업이 어딨어’ 이러쿵저러쿵 회사 동료와 흉을 봤던 기억이 난다. 양해해주시길. 당시 나와 동료는 허구한 날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올 정도로 밥벌이에 치이던 때였다.
‘고3’의 반대말은 ‘인간’이라고 한다. 아이들 스스로 하는 자조적인 말이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어떨까. 내가 아는 한 국어교사는 출산휴가 중에도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을 대필해주곤 했다. 이 교장선생님, 평소 팔십팔만원 세대를 팔팔만원 세대라고 낭독하는 해맑은 분이셨는데, 이 교사는 그나마 최대한 짧게, 대신 글자는 크게 뽑아드리는 걸로 위안을 삼았다고 한다. 능력과 인성은 차치하고 최소한의 상식과 염치를 갖추지 못한 교장일수록 자신이 지닌 의사결정권을 남용하는 일이 많다. 학부모에게 소풍 장소 답사에 이어 레크리에이션 준비까지 시킨다거나 “얘들아 선생님은 이런 거(핸드크림) 안 좋아하고 이런 거(명품지갑) 좋아한다”고 교단에서 선물 꾸러미를 풀러 흔들어대는 교사도 있다지만, 그 반대편에는 교사들을 그렇게 ‘스포일드’시키는 세력이 있다. 막장 교육 정책, 맛간 윗분들, 막무가내 욕망 혹은 불안에 빠진 학부모들이다. 상당수 교사들은 “부려먹거나 밝히는 건 그나마 교직생활에 ‘적극적’이라서…”라고 자조한다. 아이들 못지않은 무관심, 무책임, 무력감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을 쓴 교사 황주환씨는 이 ‘사태’를 “굴종과 침묵”으로 묘사한다. 노예인 나(교사)가 또 다른 노예를 ‘제작’하고 있다고 말한다.
공교육 12년은 그 자체로도 길지만 한 인격체의 성장에 결정적인 기간이다.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발육의 시기가 있다. 나이들어 뼈는 부러져도 다시 붙일 수 있지만 휘거나 꺾인 인성은 펼 수가 없다. 그 결정적인 기간, 아이들의 사회생활(혹은 그 이상 영역의) 지도자는 교사이다. 인간답게 사는 모습을 보이고 가르칠 무한 책임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두 번째로 정치적이어야 할 집단은 교사들이다. 첫 번째는? 담임 교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