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는 독립 인도의 거의 모든 창작영역에서 마르지 않는 소재의 샘이자 잘하면 본전이고 실패하면 살해위협이라는 ‘양날의 칼’이었다. 가장 열성적인 간디 소비주체였던 인도 영화계에 최근 또다시 그 칼을 쥐고 나타난 이가 있다. 데뷔작 <친애하는 벗 히틀러에게>(Dear Friend Hitler) 개봉을 앞둔 라제쉬 란잔 쿠마르 감독이다. 2차대전을 막기 위해 간디가 히틀러에게 썼던 두통의 편지에서 제목을 빌려온 이 영화는(실제 간디의 편지는 ‘Dear Friend’로 시작한다) 인도 개봉에 앞서 지난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됐고, 히틀러를 우상화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평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올해 칸영화제 필름마켓에서 상영계획이 알려지면서 또다시 인도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간디의 비폭력 저항이라는 소재를 인도 안에 재현된 베를린 지하벙커에서 인도 배우가 주인공 히틀러를 맡아 풀어냈다는 점이다. 감독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말년의 히틀러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마주했던 두려움과 편집증을 보여줌과 동시에 히틀러의 이념이 간디의 비폭력 이념과 어떻게 충돌했는지를 묘사하는 데 집중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감독의 설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감독은 인도 내 유대인 커뮤니티 영화에 대한 비판으로 원래 히틀러 역을 맡기로 했던 유명배우 아누팜 케르가 중도 하차하는 경험을 했고, 그 때문에 오히려 칼을 더욱 벼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라제쉬 란잔 쿠마르 감독이 “히틀러의 인도에 대한 사랑과 그가 인도 독립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을 영화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인터뷰하는 동안, 제작자는 “인도의 독립에 감사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히틀러다”라고 공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인도의 일부 사학자들은 “과연 독일과 전쟁에 돌입함으로써 힘을 소진한 영국이 식민제국을 포기한 것이 감사해야 할 일이냐?”, “히틀러는 만약 독일이 인도를 지배했다면 인도인들은 영국 지배를 그리워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아느냐?”며 히틀러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인도인이 영화보다 더 열광하는 크리켓 프리미어리그가 끝나는 5월 말 개봉예정인 이 영화는 세계시장 진입을 염두에 두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버전으로도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관객의 보이콧을 의식한 탓인지 인도 국내에서는 <간디가 히틀러에게>(Gandhi to Hitler)라는 제목으로 개봉한다. 폭력과 비폭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두 인물이 스크린 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조우할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눈치다.
히틀러가 나무 주위를 돌며 노래하진 않아
시나리오작가 날린 싱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국제적인 소재가 인도영화에서 다뤄진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언어문제라든가 외국의 시대상황을 재현하는 데 따르는 부담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나 역시 외국의 시대적 상황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한편으로는 인도어로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 역시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예전에 만들어진 히틀러 관련 영화들을 보면서 독일인인 히틀러가 영어로도 말하는데 굳이 인도어로 말하면 안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언론은 이 영화가 전형적인 발리우드영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히틀러가 나무 주위를 돌며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다. (웃음) 다만 간디가 살던 시대를 묘사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종교음악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해외 개봉판에서는 노래가 빠질 것 같다. 춤과 음악이 들어가면 무조건 발리우드영화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시나리오에서 역사적 사실과 가공된 이야기의 비율을 어느 정도인가. =2년 동안 조사했고 대부분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다만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되어야 할 부분에는 약간의 가공된 이야기를 삽입했다.
-이 영화에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인도에 대한 서구인의 시각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줄 수 있다면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