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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앵콜 거절하는 여자, 이별 연습하는 남자

<혜화,동>의 두 테마곡

남자는 애쓴다. 여자는 돌아보지 않는다. 남자는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여자는 그럴 필요없다고 속삭인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는 회고록이다. 이런 내가 잔인한가 물을 만큼 냉정하다. <혜화,동>도 그렇다. 달콤했던 순간은 결핍과 상처로 남고 아이는 영영 사라졌다. 서로 맞닿던 입김과 약속은 그대로인데 어째서인지 죄다 아득한 게 되고 말았다.

영화엔 두곡의 테마가 있다. <앵콜요청금지>와 쇼팽의 <연습곡 3번, 이별>. 전자는 혜화의 테마고 후자는 한수의 테마다. 한수가 청승맞은 쇼팽에 파묻혀 현실을 외면할 때, 혜화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를 들으며 담담히 현재를 응시한다. 하여 이건 어쩔 수 없이 혜화의 영화다. 안타까운 건 한수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그러니까, 엉망진창인 채로 헤맨다. 혜화 등 뒤에서 간신히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 녀석이 답답하고 짜증나고 또 불쌍해 죽겠다. 한수의 감정은 슬픔이 아닌 죄의식이다. 그래서 뭐든 하겠다며 기를 쓴다. 하지만 뭘 저질렀는지 똑바로 볼 용기는 없다. 이게 안쓰럽다. 죄책감을 뭔가로 덮은 다음, 쇼팽이나 연주하며 이별의 감정을 상상한다. 그래도 영화는 <앵콜요청금지>로 닫힌다. 그건 차라리 희망적이다. 마침표를 찍어야 새 문장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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