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짖음이 인간의 웃음소리보다 큰 장소가 있다. 높다란 울타리 없이도 사람들이 감옥에 갇힌 듯 살아가는 곳이 있다. 프랑수아 발레조의 <서쪽의 성>은 인간의 광기가 평온할 수도 있었던 장소를 망치는 이야기다. 성의 주인은 로베핀 남작이다. 그는 모든 승리를 비껴가는 남자였다. 그는 아들을 짓밟는 남자의 하나뿐인 자손이었다. 남작의 작위와 영지, 금전적 여유까지를 물려받았으니 나쁘지만은 않았겠지만 로베핀은 아버지의 험담, 그리고 학대에 가까운 훈육에 길들었다.
아버지의 사후, 그가 자신의 것이 된 영지에 왔을 때 그곳에는 사냥터지기 랑베르가 가족과 사냥개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1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로베핀은 여자들을 성으로 데려오기도 하고, 파리로 가 어지러운 세상에서 한몫을 해보려고 한다. 나폴레옹이 득세하고 또 자리를 내주던 시기, 로베핀은 세상과 어우러지고자 하지만 그의 어두운 일면은 그를 늘 서쪽의 성으로 되돌아오게 한다. 사냥터지기는 알게 된다. 그의 주인이 여자들을 데려와 옷을 벗긴 뒤 성 안에서 달리게 한다는 것을. 그 자신은 그녀들을 뒤쫓고, 그녀들의 옷을 갈가리 찢고, 또…. 로베핀이 데려온 여자가 수상쩍게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냥터지기는 주인이 자신의 딸의 옷도 벗기고 싶어 한다는 눈치를 알아챈다.
파리에서는 정치적 소용돌이가, 외딴 서쪽 성에는 광기의 소용돌이가. 19세기의 이 기묘한 풍경이 조응하는 현대의 지점은 이라크 후세인 시절의 정치범 수용소다. 하지만 그런 큰 그림보다 흥미로운 게 정신의 균형감각을 잃어가는 로베핀과 그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랑베르의 가족이다. 랑베르의 딸이 로베핀에게 두려움을 갖지 않을 때 독자는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고, 정의를 이룬다는 말이 공허한 울림만을 남길 때 <서쪽의 성>은 허무에 가까운 쾌감을 안긴다. 일말의 카타르시스도 없는 결말이 독하고 진한 잔상을 남긴다. 공쿠르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장 지오노상을 비롯한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