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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당신을 우리 마음 속 타임캡슐에 묻겠습니다

4월25일 향년 72살로 영면한 배우 김인문을 추모하며

2003년 여름, 평창동의 한 관광호텔 로비로 들어오는 그는 ‘등장했다’는 표현 외에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는 모시저고리에 부채질을 하는 드라마 속 시골 이장님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렌지색 날렵한 운동화에 반바지, 알록달록 하와이언 셔츠에 선글라스로 머리를 올린 채 보무도 당당하게 등장한 김인문은 어딜 봐도 멋진 도시남자였다. 그리고 툭 던지는 첫마디. “지금도 날 보면 다들 그래요. 샤-프하다고.”

1939년생, 지난 4월25일 향년 72살로 영면한 고 김인문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눈뜨자마자 자연스럽게 만났을 친근한 배우였다. 어렸을 때부터 사물을 보는 관찰력이 유독 뛰어났던 그는 10살도 되기 전에 일본에 건너가서 성공하겠다며 호기를 부리는 배포 큰 소년이었다고 했다. “삼각산을 우러러보며 대성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지.” 영화를 좋아하고 어깨너머로 연극 책도 읽었지만 진로는 평범하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농대를 졸업한 26살 무렵 그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에 떡하니 붙어서 “흰 칼라 입은 멀끔한” 동사무소 재무담당으로 일하게 되었지만 자유당 말기, 매번 책상 아래 놓인 뇌물이 부담스럽고 “인생에 흠집 나는 게 싫어서” 2년8개월 만에 때려치웠다. 이후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김수용 감독 집 앞에서 장장 13개월을 버텼다. 여름이면 적십자에 가서 피를 뽑아 매혈하고, 겨울에는 천호동 벽돌공장에서 벽돌을 구우면서 추위를 피했다. 그렇게 1년 넘게 기다린 끝에 김수용 감독은 카메라 앞에 설 기회를 주었고 7, 8개월 동안 엑스트라를 거친 뒤 신영균, 윤정희 주연의 <맨발의 영광>에서 비중있는 깡패 역할로 본격적인 배우인생을 시작했다.

마누라 덕에 겨우 밥을 먹으면서도 체면은 차리는 <감자>의 무능력한 소금골 서 서방, “가진 건 쥐뿔도 없는데 달랑 하나 있는 것도 제구실을 못하는” 천덕꾸러기 남편으로 등장한 <수탉>까지, 꽤 오랫동안 그는 무력한 남자의 초상이었다. 호방하게 계집 한번 후리지도 못하고 구들장에 누웠다가 밥상이나 받는 아버지, 세상사의 흐름에서 조금 비껴나간 듯한 장돌뱅이 같은 역할 역시 한참 동안 그의 차지였다. “배우란 늘 선택되어야 하는 존재잖아. 그러니 어떡해, 늙어죽을 때까지 선택받게끔 노력하는 수밖에, 난 한번도 떠본 적도, 떨어져본 적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오히려 꾸준히 할 수 있는 거지.” 김인문은 <순심이>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옥이이모> 같은 드라마를 비롯해 <조폭마누라> <엽기적인 그녀> <영어완전정복> 등 웬만한 히트 영화에서도 빠지지 않고 얼굴을 볼 수 있는, 휴식을 모르는 연기자였다. 그러나 동시에 구멍난 독에 물을 가득 채워보라는 선문답을 던지던 <달마야 놀자>의 주지스님, 끝말잇기의 달인인 <재밌는 영화>의 귀여운 대통령,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똥지게를 진 무능한 아버지, <철없는 아내,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의 쌍욕도 서슴지 않고 내뱉는 늙은 ‘운짱’까지, 그는 한순간도 같은 얼굴을 보여준 적 없는 배우이기도 했다. 특히 <바람난 가족>에서의 김인문은 “그레고리 펙 같은” 느낌을 원했던 감독의 기대를 뛰어넘어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등장을 보여준다. 특유의 새된 목소리를 낮추고, 표정을 줄인, 피를 토하면서도 죽음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이상하게 멋진 할아버지는 꽤 긴 여운을 남겼다.

“배우는 늘 한이 많아. 해놓고 나면 늘 후회한다고. 그런데 창자로, 이 배창자에서 끌어올려서 연기를 하고 나면 정말 만족감을 느끼거든. 그게 진짜야. 진짜 연기”라고 자신만의 배우론을 토해내던 특유의 목소리도, 서울 600년 기념으로 묻힌 타임캡슐에 기록되는 아름다운 시민 600명에 뽑혔다며 천진하게 미소짓던 그 모습도 아직 눈에 선하다. “부자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 그저 연기자로서 살았던 시민인데 400년 뒤에까지 내 이름이 기억된다니 너무 영광이지 않아요?” 어디 400년뿐이랴. 창자가 끊어질 열정으로 그가 그려낸 소시민의 초상은 스크린에 기록되어 시간을 초월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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