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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정] 언젠가는 팜므파탈이나 술집 작부도 해보려고

10년 만에 영화 현장에 복귀한 <써니>의 유호정

10년 만의 화려한 외출이다. <취화선>(2001)에서 단아한 기품과 깊은 매화향이 나는 ‘매향’을 연기한 유호정강형철 감독의 신작 <써니>로 영화 현장에 돌아왔다. <써니>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남편과 딸의 뒷바라지에 여념없는 가정주부 임나미. 우연히 병원에서 고교 시절 칠공주 ‘써니’ 멤버로 친하게 지낸 춘화(진희경)를 만난 나미는 25년 전 함께 소중한 추억을 나눈 다른 ‘써니’멤버들을 찾아나선다. 극중 유호정은 몇몇 장면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교복을 입은 채로 날아차기도 선보이는데, 이는 그간 TV드라마에서 보여준 청순함과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면모다. 우리가 알던 그 유호정 맞아? 라고 할 만하다. 햇살이 유독 따스했던 어느 봄날, 유호정을 만나 10년 만에 충무로로 복귀한 소회를 물었다.

-언론 시사회 반응이 좋다. 예상은 했나. =솔직히 기본 이상은 하겠다, 는 자신감은 있었다. 시나리오가 좋았고, 현장에서 (감독님께서) 잘 찍는다, 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봤는데 기대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

-<취화선> 이후 10년 만의 영화 복귀작이다. =드라마하느라 바빠서 영화 시나리오를 받아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여유가 없었다. 자신감이 드는 작품도 없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10년이 훌쩍 지났다. 영화는 못하겠다, 그건 아니었는데…. 큰아이를 임신했을 때 <취화선>을 찍었는데, 지금 그 아이가 10살이 됐다.

-강형철 감독이 “극중 ‘나미’는 우아하면서도 순수해야 하는데, 이 조건을 충족하는 40대 여배우는 유호정 선배밖에 없다”고 하더라. =감독님께서 나미 역에 나만 생각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우아한 여자가 아니라는 건 현장에서 다 밝혀졌다. (웃음)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나미는 어떤 여자던가. =평범한 가정주부?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다보면 자신을 찾는 게 참 힘들다. 나 역시 연기할 때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평범한 주부로 지낸다. 그때는 ‘온전한 유호정’이 없어지고 한 남자의 아내와 아이들의 엄마로만 존재한다. 가끔 배우와 주부 사이에서 혼돈이 생길 때도 있는데, 어쨌거나 나미는 캐릭터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공감이 가는 역할이었다. 또, 그 안에 내 추억들이 묻어나 있었다.

-학창 시절 굉장히 내성적이었다고. 그런 성격으로 어떻게 배우를 하게 됐나. =지극히 평범하고, 튀는 걸 좋아하지 않고,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정말 꺼렸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내가 배우가 된 데 깜짝 놀랐을 거다. 서울예대에 입학한 것도 담임선생님의 권유였고 데뷔도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되면서 할 수 있었다. 끼가 없는 배우로는 내가 대한민국 최고일 거다. 끼가 없었기 때문에 나미의 보이지 않는 면모를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미는 전라도 벌교 출신이다. 배우 유호정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니 제법 낯설더라. =사투리를 어색하게 해달라, 가 감독님의 요구였다. 어릴 때 사투리를 썼던 아이가 지금은 서울 사람이 된 건데, 그게 어떤 식으로 보여질까 고민이 많았다. 사실 싱크로율에 대한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춘화 같은 애들은 어린 시절이나 현재나 비슷한, ‘투숏’ 같은 느낌이 있는데, 나미 역시 어린 시절과 비슷한 느낌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감독님께서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하셨다. ‘어릴 때 시골에서 올라왔지만 자라면서 다 변한다’고.

-나미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심은경이 인상적이었다. =은경이는 물론이고 과거 시절을 연기한 후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 첫 대본 리딩 때 너무 우울했다. 쟤네(후배)들은 왜 이렇게 잘하니, 하면서 갑자기 자신감이 확 떨어지더라. ‘이거 하지 말걸’ 그러면서 감독님을 만나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감독님께서 ‘선배님 왜 이러세요. 선배님들 다 잘하고 계시는데 얼마나 칭찬을 더 해드려야 돼요’라고 하시더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성인 시절을 연기한 배우들도 다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때부터 후배한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어야겠다, 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날아차기도 직접 하고 춤도 추더라. =내가 정말 몸치다. 춤도 완전 못 추고 노래도 못한다. 노는 것과 거리가 멀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써니’ 멤버들과 단체로 춤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춤 배우는 것도 어찌나 힘들던지…. 촬영 전 두달 정도 춤 연습을 했다. 나중에 그 춤이 별거 아니라고 느낀 건 어린 ‘써니’ 멤버들이 연습하는 것을 보면서부터다. 우리가 두달 동안 배운 걸 얘네들은 두번 만에 배우더라. (웃음) 그래서 너희들 어쩜 그렇게 잘 출 수 있니, 라고 감탄하자 아이들이 ‘이건 정말 쉬운 춤’이라고 하더라.

-또 누가 춤추는 걸 어려워했나. =홍진희 언니가 어려워했다. (웃음)

-홍진희씨는 춤을 잘 출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내 말이. 제일 잘하는 건 뮤지컬을 전공한 김선경 언니. (이)연경씨도 잘했고. 진희경 언니도 그렇게 잘했다. 특히, 진희경 언니는 춤을 춰야 하는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우리 연습할 때 만날 와서 같이 연습했다. (웃음)

-얘기와 다르게 영화에서는 다들 춤을 잘 추시더라. =그건 편집의 승리다.

-크랭크인 전, 날아차기 장면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써니’ 멤버들이 나미 딸을 때린 아이들을 혼내주는 신인데, 와이어 액션을 처음 해봤다. 사실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촬영 며칠 전부터 감독님으로부터 ‘공원에서 나미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나무 위를 휙 날아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무섭더라.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그런데 날아차기를 잘하더라. =그것도 편집의 승리다. 기술이 많이 좋아졌다. (웃음) 열심히 한다고는 했는데, 그날 감독님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 신은 참 부끄럽다.

-예전에는 액션영화 시나리오가 안 들어왔나. =그럴 리가 있나.

-배우 유호정하면 청순하고, 단아하고, 모범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이미지를 역으로 이용하려는 감독이 전혀 없었다는 말인가. =없었다. 음… 그리고 모르겠다. 해보지 못한 영역에 대한 욕심 같은 건 배우로서 있다. 항상 똑같은 이미지만 하고 있으면 어떡하지, 그런 것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도 있다. 조금 다른 색깔을 해보면 좋지 않을까, 라는 욕심도 있고. 그러나 배우라는 직업은 우리(배우)가 선택하는 것보다 선택을 받는 면이 강하다. 어떤 면에서 지금 내 이미지는 내가 만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아무리 대단한 감독이 대단한 시나리오를 들고 와서 액션 연기를 하자고 해도 못할 것 같다. 배우가 어떤 역할이든지 맡으면 잘하려고 노력해야겠지만 정말 내 안에 없는 면모일 수도 있거든. 그걸 억지로 끄집어내면 보는 사람도, (연기를) 하는 나도 불편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안 하는 게 현명한 게 아닐까.

-그럼에도 비슷한 이미지가 구축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나. =성격이 긍정적이고 대범한 편이다. 특히 큰일이 닥쳤을 때 훌훌 털어버릴 수 있고, 포기가 빠르다. 그럴 수 있었던 건 큰 욕심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데뷔 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내가 톱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높은 곳에서 내려간다, 는 느낌도 경험하지 못했고. 그런 나 자신에 만족한다.

-오늘 의상과 메이크업은 제법 섹시하고 새로운 느낌이다. =앞으로 이렇게 하고 다녀야겠다. (웃음) 언젠가는 팜므파탈이나 술집 작부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 지금은 아이들의 엄마로서 그런 연기를 경계하는 건 사실이다. 배우로서 편식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은 한다. 동시에 배우이기도 하지만 엄마면서 아내다. 그걸 완전히 무시하고 나만 찾아가기는 아직 시기적으로 이른 것 같다. 내가 무슨 역할을 하더라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 때 나를 찾고 싶다. 또, 지금까지는 내가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야겠다, 와 같은 계획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영리하지도 않고. 그저 내 나이에 충실한 것,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중에서 좋아하는 걸 찾다보니 지금까지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떻게 늙어가는 배우가 될까, 와 같은 고민을 하면서 계획하고 준비하고 싶다.

-그 점에서 <써니>는 ‘배우 유호정’에게 어떤 작품인가. =나미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역할인 만큼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써니>는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지금까지 감독님과 함께 만들어간 작품이다.

-다음 영화는 10년 뒤에 볼 수 있나. =하하하. 언제나 그랬듯 이건 꼭 해야겠다, 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면 언제든지 출연할 거다. 차기작은?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남편과 나, 둘 다 연기를 하니까 서로 번갈아가면서 활동하기로 했다. 남편이 쉴 땐 내가, 내가 쉴 때 남편이 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은 남편이 드라마를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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