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소설을 쓰는 김중혁이라고 합니다.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전대미문의 ‘날로 먹기’ 영화칼럼 빙자 사기글로 악명이 드높았던 ‘나의 친구, 그의 영화’를 소설가 친구인 김연수와 함께 연재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그 칼럼은 <대책없이 해피엔딩>이라는 이름을 달고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만).
이번에는 음악입니다. 사정이 좀 있습니다. 저는 몇달 전 KT&G상상마당으로부터 매달 신보를 소개하는 <쇼케이스>의 사회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경상북도 김천 출신으로 평소 ‘어’와 ‘으’를 구분하기 힘들어하고 야구장에 가서는 ‘삼성승리’라고 응원해야 할 것을 ‘삼승성리’로 외치는 사람인데(이래놓고 정작 저는 롯데 팬!), 저에게 <쇼케이스> 사회를 맡긴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래서 거절해야 마땅한 일이었지만, 저는 덜컥 수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뮤지션을 만나 음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 망설일 게 뭐 있겠습니까. 그들과 나눈 음악 이야기와 저의 음악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아서 한달에 한번 이 지면에다 쓸 생각입니다.
제 얘기부터 잠깐 하겠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형을 원망했습니다. 형은 음악을 거의 듣지 않았습니다(요즘엔 인디음악에도 관심이 많던데, 거, 참, 진작 좀 그러시지!). 중학교 시절의 반 친구들은 음악 좋아하는 형들로부터 각종 LP와 카세트테이프를 한아름씩 물려받곤 하던데, 내가 물려받은 것은 음악적 가난뿐이었습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하고, 음악적 가난은 하나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지만(응? 이런 말이 있었어?) 직접 겪어보면 참 서럽습니다. 친구들은 한달에 수십명의 아티스트를 알아나가는데, 맨땅에 헤딩하는 자의 행보는 참으로 멀고 더딥니다. 음악을 사고, 듣고, 실패하고(가끔 성공!), 빌리고, 듣고, 실패하고(아주 가끔 보석 같은 앨범을 발표하고), 돈도 깨지고, 시간도 깨지고, 머리도 깨지고, 그렇게 음악을 알아나갔습니다(맨땅에 헤딩하는 자들의 모든 깨진 머리통에 축복 있으라!).
독학의 절정은 실패하는 과정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요즘 같은 취업대란의 시대에 이런 말 하기 겁나지만). 실패하지 않으면 성공의 기쁨을 알기 힘듭니다. 취향에 맞지 않는 노래들을 많이 들어봐야 내가 어떤 노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 아니라 내 판단으로 취향을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음악들을 무수히 걸러내고 남은 ‘내 노래’들은 아름답습니다.
요즘엔 ‘스킵’(skip)이 대세인 듯 합니다. 앨범을 사기 전에 모두 스킵을 합니다. “에이, 이건 뭐랑 비슷하지 않아?” “딱 들어보니 내 취향이 아니네.” “넘겨!” “넘기고!” “다음!” “에이, 이 앨범은 안 사도 되겠다.” 아니, 정말 딱 5초만 들어보고 다 알 수 있단 말씀입니까? (<개그콘서트> 여당당 김영희 선생님이 한말씀 하십니다!) “어이, 증말 대단한 브라이언 엡스타인 나셨다, 그죠?”
한때는 저 역시 스킵 중독자였습니다. 그게 시간을 아끼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빨리빨리 듣고, 필요없는 건 걸러내고, 그렇게 음악을 듣는 게 효율적인 것인 줄 알았습니다. 세상에, 음악이란 단어와 효율이란 단어는 얼마나 멀리 있습니까. 13분짜리 곡을 듣다가 12분쯤 온몸에 찌릿한 전기를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킵’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알 것입니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뮤지션들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고, 연주를 하고, 녹음을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발매를 하는 뮤지션들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모든 노래들은 시간을 이겨내고 우리의 귀로 전송된 음악들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함부로 스킵할 수 없습니다.
칼럼의 제목은 ‘No Music No Life’입니다. ‘노 뮤직 노 라이프’는 타워레코드의 카피였습니다만, 저는 저 구절을 볼 때마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곤 합니다. 그렇지, 음악이 없으면 삶도 없지, 암, 그렇고말고. 보고 또 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누군가의 삶으로부터 이런 멋진 음악들이 태어났고, 우리는 또 그 음악을 들으면서 절망 대신 희망을 택합니다. 음악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겁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겁니다. 삶이 음악을 바꾸지만 음악도 삶을 바꿉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