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미썸딩>이 세기말에 대한 영화였다면 <테슬라>는 지나간 것보다 채워넣을 것이 많은 21세기에 관한 영화다.” 1999년 <텔미썸딩> 이후 2년 넘게 장윤현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프로젝트는 SF영화 <테슬라>였다. SF영화라는, 국내에선 생소한 장르에 도전하면서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치는 데만 2년 이상이 걸렸다. 비슷한 시기에 준비를 시작한 SF영화들이 이미 촬영을 마친 것에 비하면 지극히 더딘 발걸음이지만 장윤현 감독은 여전히 “고민이 많다”고 말한다. 수익성을 고려하면 제작비 40억원을 넘지 말아야 하고 그런 조건에서도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스펙터클을 만들자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 그러나 시나리오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지금, 그는 확실한 뭔가를 잡은 듯 그간 밝히기 꺼리던 <테슬라>의 탄생배경을 소상히 설명한다.
<테슬라>를 구상한 것은 기인으로 알려진 에디슨 시대의 과학자 니콜라스 테슬라로부터 비롯된다. 물리학자이자 전기과학자였던 테슬라는 직류전기에 집중했던 에디슨과 달리 교류전기가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던 인물. 생존 당시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테슬라가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그가 남긴 여러 가지 기계장치들 때문이다. 테슬라의 연구기록을 뒤져도 그같은 장치의 용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여기서 하나의 가설이 등장한다. 테슬라가 연구했던 것이 순간이동장치라는 가설. 어느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임 없이 이동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X파일>의 에피소드로 어울릴 이런 발상이 온전히 장윤현 감독의 것은 아니다. 마이클 파레, 낸시 알렌 주연의 1984년작 <필라델피아 엑스페리먼트>는 1943년 미국 해군이 전함을 이용해 순간이동실험을 했다는 가정 아래 1943년에서 1984년으로 순간이동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국 해군이 레인보 프로젝트라 명명했던 이 실험에서 순간이동장치로 이용된 것이 테슬라가 만든 테슬라코일이라는 기계. 장윤현 감독은 테슬라코일이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라고 규정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과 전혀 다른 질서로 만들어진 또다른 세계, 그곳으로부터 우리의 존재를 파괴할 위험한 음모가 진행된다. 그들이 송출한 정보로 전사가 만들어져 테슬라코일이 작동하고 두 세계를 잇는 문이 열리면 세상은 끝장난다. <테슬라>의 남녀주인공은 그것을 막기 위해 싸운다. 액션과 멜로가 SF적 상상력을 지지할 두 기둥이 되는 셈이다.
장윤현 감독은 <텔미썸딩>을 개봉할 무렵부터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보이는 것이 가치판단의 기준인 세계에 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 우리가 보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가 있는데 우리는 단지 그들과 소통을 못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계기로 두 세계에 연결고리가 생기면 어떤 충돌이 생길까? <테슬라>는 그 충돌을 전쟁으로 묘사할 것이다.” 장윤현 감독은 태백시의 폐광에서 <테슬라>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발견했다. 태백시와 협의해 폐광에 세트를 짓고 영화 촬영 뒤 관광자원화할 계획. 그는 제작 전에 국내 SF팬들의 협조를 구하는 프로모션도 구상하고 있다. 영화, 문학, 게임 등을 망라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아직 변방의 장르로 취급받는 SF를 주류의 관심사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접속>의 감독에게 좀더 쉽게 찍을 수 있는 멜로물의 유혹도 적지 않았을 텐데 이토록 오랜 시간과 돈을 들여 SF영화에 매달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말로 답한다. “내가 이 고비를 헤쳐서 넘어가지 못하면 편한 영화를 하더라도 지루하고 재미없게 만들 것 같다”고 덧붙인다. <테슬라>는 한국의 SF가 넘어야 할 고지이자 장윤현의 연출세계가 목표로 삼는, 완벽한 장르영화로 통하는 비밀의 문이다.
어떤 영화
우주도 생성하고 소멸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 바깥에 또다른 세계가 있다. 엔트로피의 증가로 존재가 소멸돼가는 또다른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들은 두 세계가 연결되는 테슬라의 문을 열고자 유전자정보를 송출해 지금 이 세계에서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할 전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또다른 세계의 이런 음모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테슬라의 문을 열려는 전사를 막기 위해 싸우는 남녀 주인공, 그들은 엄청난 힘을 지닌 전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