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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떨기 야생화의 마지막 생

영화로 다시 태어난 노희경 원작 단막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15년 전에 드라마로 방영된 다음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던 노희경 원작의 단막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드라마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드라마와 영화 사이의 차이 그리고 영화가 새로 추구한 점들을 살피며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말해본다. 감독의 인터뷰도 함께 실었다.

한편의 드라마가, 그것도 단지 이틀 동안 방영된 네 시간짜리 단막극 한편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고 희귀하다. 1996년에 MBC 창사 특집극으로 방영됐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서 오랫동안 얘기되어왔다. 본 사람은 눈물의 수기를 고백하는 마음으로, 보지 못한 사람은 못 봤어도 그 눈물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서로 말이 통했다. 훗날 극본을 쓴 노희경은 유명 극본가가 되었고 마니아층을 둔 지 오래됐다. 그가 초기에 썼던 이 드라마는 다시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극본가 자신이 다시 소설 형식의 책으로 묶어 냈고 지금은 마침내 영화로도 찾아왔다. 당시에 드라마를 접한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고 대본집을 읽고 연극을 보면서 민규동 감독은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됐고 마침내 영화화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공감의 TV 드라마가 연극과 소설, 그리고 영화로 완성

이야기는 공히 알려진 그대로다. 50대를 막 넘긴 인희(배종옥)는 위로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김지영)를 극진히 모시고 곁에는 한번 의료사고를 저지른 다음 늘 풀이 죽어 다니고 이제는 등 떠밀려 퇴직 위기에 몰린 월급쟁이 의사 남편(김갑수)을 두고 있다. 큰딸(박하선)은 어엿한 직장에 다니지만 유부남과의 막막한 사랑에 빠져 있고 아직 대학에 가지 않은 철없는 막내아들(류덕환)은 언제나 엄마보다 여자친구가 우선이다. 인희에게 형제간의 피붙이라곤 남동생 근덕(유준상)밖에 없는데 그는 집안의 골칫거리다. 인희는 늘 도박과 술에 빠져 사는 동생보다 동생의 아내(서영희)와 더 마음을 나눈다. 그 인희에게 죽음이 성큼 다가온다. 평생 아내와 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자리에서 헌신하며 살아왔던 한 인간이 청천벽력 같은 말기 암 선고를 받는다. 인희는 그녀가 죽게 된다는 사실을 가족 중 누구보다 가장 늦게 알지만, 알게 된 뒤로는 누구보다 가장 의연하게 마지막을 준비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그 인희라는 여자의 마지막 생에 관한 이야기다.

원작 드라마에서 인희의 역할은 나문희가 했다(연극에서는 정애리, 송옥숙이 동명의 역을 했다). 영화에서는 배종옥이 인희다. 두 배우는 거의 상반된 이미지를 지녔지만 노희경 드라마의 대표적인 얼굴로 자주 등장했던 배종옥은 어딘지 영화의 감성과 드라마의 감성을 접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영화 속 인희는 드라마의 인희에게 없던 이미지를 갖게 됐다. “아름답고 예쁜 꽃이 아닌 자세히 봐야 예쁜 야생화의 이미지로 표현하려 했다”고 감독은 말한다. 그래서 영화 속에는 꽃의 이미지들이 많다. 가족관계는 좀더 입체적으로 구성됐고 그중에서도 시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상됐다. 치매에 걸린 인희의 시어머니는 영화에서 인희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다시 등장하여 작별인사를 고한다.

원작의 감정 충실히 살렸지만 밀도는 아쉬워

원작과 달라지기 위해 시도된 변화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감성적 힘이라면 대체로 원작이 힘을 발휘한 그 지점에서 온다. 노희경 극본의 힘은 평이한 것처럼 보이지만 생의 감정을 압축하는 대사들에서 나오는데 영화도 그걸 잘 살렸다. 드라마가 감정을 끌어올린 대사와 장면에서 영화도 역시 감정이 치닫는다. 반면에 의아할 정도로 느슨한 장면들이 종종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딸과 아버지가 새집을 청소한 뒤 차를 마시며 함께 서서 대화하는 장면에서 그들은 지금 죽어갈 어머니이자 아내에 관해 말하는 중인데도 제스처와 시선처리와 대사의 뉘앙스와 그걸 담는 카메라의 분위기에서 그 어떤 애틋함 내지는 잔혹함을 전달하는 데 미흡하다.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선한 마음을 지닌 고운 통속극이다. 하지만 이 말이 전적으로 이 영화가 뛰어난 통속극이라는 뜻은 아니다. 시들고 병드는 육체, 그걸 막아내지 못하는 무력한 관계들, 끝내 소멸하는 존재의 쓸쓸함 앞에서 우리의 눈물은 본능이지 그 통속극의 가치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뜨거운 눈물의 공감대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통속극이 되기에는 너무 익숙한 방식이어서 부족해 보인다. 뛰어난 통속극은 외면하고 싶은 인생사의 통념을 불가피한 것으로 끝내 인정하도록 만들고 마는데, 그때 그 작품은 역설적으로 상용과 적정의 고지를 개별의 집요한 형식미로 훌쩍 뛰어넘어버린다. 그래야만 그 통속의 감정이 눈물이 마른 시간에도 정념으로 아로새겨져 오래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하고 고운 이 영화에 남게 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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