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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바람과 불 / 사랑할 수 없는 시간

한국영화의 발견

날선 시각으로 벼려낸 한국 현대사의 풍경을 조망한다. 한국영화, 여전히 팔팔하다.

<미국의 바람과 불> An Escalator in World Order

국제경쟁 / 2011년 / 118분 / 김경만 / 한국

미국은 한국에 어떤 존재인가. <미국의 바람과 불>은 이 질문에 대해 영상의 재구성으로 쓴 대답이다. 한국의 근대 풍경을 담은 초기의 기록영화와 <대한뉴스>, 국정홍보영화, TV 뉴스릴을 재편집한 영화는 한마디의 내레이션 없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정리해낸다. 먼저 눈에 띄는 건 권력의 자리에 오른 뒤 꼬박꼬박 미국 대통령과 만남을 갖는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이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부터 “사대주의를 배척하자”고 했던 박정희를 거쳐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그들은 모두 당시의 미국 대통령을 만나거나 미국 의회를 찾아 연설했고, 그때마다 미국은 그들의 권력을 허락했으며 국민도 열광했다. 이런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본다면 미국 건국 200주년을 축하하는 성대한 공연이 한국에서 열렸 것도 그닥 의아한 일이 아닌 듯 보인다.

영화는 한·미 관계의 역사를 횡적으로 연결하는 한편, 이를 통해 드러나는 아이러니한 한국의 풍경을 종적으로 이어놓는다. <각하의 만수무강>(2002)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2003) 등에서도 영상의 재구성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냈던 김경만 감독은 미국의 무기개발을 찬양하는 <대한뉴스>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비난하는 기독교의 기도회를 연결시키고, 전두환의 취임연설에 광주민주화운동의 장면들을 배치시키면서 그들의 언어를 무너뜨린다. 대한뉴스 특유의 과장된 아나운싱이 겹치면서 드러나는 유머 또한 상당하다. 의미와 의미가 더해지는 순간, 88올림픽처럼 자랑스러웠던 역사조차 미국을 향한 애정의 이벤트가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되고 급기야 감독이 비추는 지금의 모습은 섬뜩할 지경에 이른다. 입학식에서 영어공용화 수업을 강조하는 포항공대 총장, 관악구 영어마을 개관식에서 <I Love America>를 열창하는 꼬마들, 6·25 60주년 기념기도회를 찾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모습까지. <미국의 바람과 불>은 한국에 뿌리박은 미국의 역사가 얼마나 유구한가를 드러내는 다큐멘터리인 동시에 이미지와 언어의 충돌로 빚어낸 놀라운 실험이다.

<사랑할 수 없는 시간> The Time of Lovelessness

한국장편경쟁 / 2011년 / 67분 / 김희철 / 한국

<사랑할 수 없는 시간>은 김희철 감독이 2004년에 발표한 <진실의 문>의 후일담이다. 1998년 2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김훈 중위가 사망했다. 군 당국은 사인을 자살로 발표했지만, 유족을 비롯해 그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이들은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진실의 문>은 김훈 중위의 죽음 이후, 진실을 밝히려 한 이들의 험난한 시간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미군과 1군 헌병대의 1차 수사, 국방부 감찰부의 2차 수사에 이어 합동조사단이 발족돼 진행한 3차 수사 과정을 살펴보던 영화는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합동토론회에서 벌어진 뜻밖의 풍경과 마주친다. ‘자살’이라는 결론을 향해 의견을 꿰맞추던 법의학자들의 모습, 그들을 향해 예외의 경우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달라고 외치는 김훈 중위의 아버지. 결국 김훈 중위의 죽음은 다시 미궁에 빠졌다. 그리고 약 6년 뒤인 현재. 군의문사위원회는 ‘진상규명 불능’이란 결론을 내놓는다.

<사랑할 수 없는 시간>에는 4개의 죽음이 등장한다. 김훈 중위의 죽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화재로 꺼져버린 남대문, 그리고 현 정권하에서 폐지된 군의문사위원회. 김희철 감독이 전작의 후일담을 내놓게 된 배경은 더 많은 진실이 은폐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한국사회의 총체적 단면인 듯 보인다. 이런 시대에 진실을 알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전작에서 수록한 기록들과 여전히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족의 결연한 태도를 재구성한 <사랑할 수 없는 시간>은 끈질기게 기억하고, 묻고, 저항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7년 전의 <진실의 문>은 “나도 내가 왜 죽었는지 궁금하다”라는 가상의 목소리로 끝을 맺었다. 김훈 중위가 사망한 지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에 대한 진실은 밝혀낼 수 없다. 작금의 현실에 대한 갑갑함과 무기력함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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