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누가 있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냉장고 속의 음식이 약간씩 축나고 있다. 남은 주스 양을 재봤다. 8cm가 남아 있다. 아침에 나갈 때는 15cm였는데…. 누군가가 마셨다. 그런데 난 혼자 산다. 언젠가는 생선이 감쪽같이 사라진 적도 있었다.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는’이라는 냉장고 회사의 홍보문구조차 불길한 징조로 느껴진다. <나가사키>는 이런 불안을 느끼는 한 남자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결국 남자는 웹캠을 설치하고 회사에서 집을 감시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엌을 찍는 웹캠에 한 여자가 찍힌다. 그는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집에 가달라고 말한다. 56살인 그와 비슷한 또래인 듯한 여자를 보며, 그는 늑대가 자신을 점찍었다는 걸 모른 채 서 있는 숲속 빈터의 사슴을 떠올린다. 이내 약간 후회스러운 마음이 든다. 도망가라고 여자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녀는 그를 해치지도 엄청난 도둑질을 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경찰이 도착하고, 여자는 미닫이 옷장 속에 숨어 있다 발견된다. 58살의 침입자는 오랫동안 실직자로 지내다 우연히 그가 문을 잠그지 않는 광경을 보고 집에 들어와 살았다. 가끔 다른 집에 숨어들어가기도 했지만 주로 머문 공간은 그의 집이었다. 일년이 그렇게 지났다.
<나가사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책머리에는 이 소설이 2008년 5월 <아사히신문>을 비롯해 일본 여러 신문에 실렸던 사회면 기사를 바탕으로 삼았다고 적혀 있다. 일년 동안 남의 집에 숨어산 사람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다.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몇번이고 얘기하고 또 들었을 일본산(産) 도시괴담. 한 여자 선배의 집에 술을 마신 남자 후배가 찾아갔다. 바닥에라도 좋으니 재워달라던 후배는 자리에 눕는가 싶더니 벌떡 일어나 편의점에 라면을 먹으러 가자며 여자 선배를 끌어내다시피 집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침대 아래 한 남자가 웅크리고 숨어 있었다. 노숙을 하던 남자가 숨어들어, 여자는 모르는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나가사키>를 쓴 사람은 에릭 파이라는 프랑스 작가라는 것이다. 그에게 이 이야기는 도시괴담보다는 도시인의 소외라는 이슈로 다가왔다. “위기가 사람들을 조금 더 혼자로 만들었다. 대화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우리’라는 말이 아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각각의 ‘나’들은 불 주위로 모여드는 게 아니라 동떨어져 서로를 염탐한다. 저마다 이웃보다 잘 헤쳐나가고 있다고 믿는데, 어쩌면 이 또한 인간의 종말인지도 모른다.” <나가사키>의 후반부는 침입자인 여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대목에 이르면, 이번에는 ‘맥도날드 할머니’ 이야기가 당신 머릿속에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는, 두려움도 외로움도, 가난만큼 충격적이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