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너무 사람 많아, 홍대 사람 많아, 신촌은 뭔가 부족해.” 가슴 뭉클한 대사, 화려한 세트와 로케이션, 그리고 UV와 박진영의 절묘한 호흡이 찬란한 불빛과 함께 어우러진 <이태원 프리덤> 뮤직비디오를 보고 젊음이 가득한 세상으로 떠난 사람들이 많으리라. 이 걸작 뮤직비디오의 뒤에는 유일한 감독이 있다. 유세윤의 오랜 단짝이자 Mnet PD로서 <UV신드롬>을 함께했으며 UV의 <쿨하지 못해 미안해>와 <집행유애> 뮤직비디오까지 연출한 숨은 인물이 바로 그다. 그들과 함께 ‘안전지대’라는 공동창작집단을 이끌며 장차 장편 기획까지 꿈꾸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이태원 프리덤>은 세트 제작부터 로케이션 촬영, 그리고 박진영 캐스팅까지 대단한 야심이 돋보인다. 어떻게 시작하게 된 작품인가. =박진영 형은 전에 JYP 소속 래퍼 산이의 <러브식> 연출을 하면서 알게 됐다. 그때 인연으로 UV랑 진영 형이랑 술을 마시는 자리가 있었다. 정작 난 그 자리에 가지 못했는데 그때 런던 보이스의 <할렘 디자이어> 스타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면 죽이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왔었다.
-당연히 이전작 <쿨하지 못해 미안해>와 <집행유애>보다 예산이 늘어났을 것 같다. =유세윤이 개인 자금으로 만들었던 <쿨하지 못해 미안해>와 비교하면 제작비가 10배 이상 상승했다. 이제는 이런 뮤직비디오가 수익도 된다는 걸 알고 세윤의 소속사에서 제작비를 댔다. 그리고 처음에는 뭔가 ‘찌질이’들이 파티하는 느낌으로 떡볶이, 자장면, 그리고 <삼국지> 게임 같은 거 올려놓은 80년대 어린이 생일상 모습을 재현하려고 했는데 예산을 더 확보하면서 세트를 만들게 됐다. 의상디자인해주는 형이 남산타워도 그리고 세트까지 해줬다. 그 형이 워낙 키치적이고 빈티지한 걸 좋아해서 지금까지도 진짜 오리지널 안전지대, 노티카 옷 다 가지고 있는 보물 같은 형이다. (웃음)
-어쨌건 시작은 <쿨하지 못해 미안해> 뮤직비디오였다. 그때 얘기가 듣고 싶다. =세윤이가 뮤직비디오 만들어보자고 하면서 UV의 음악을 들려줬다. 또 그때 미국의 코미디언 그룹이자 패러디 앨범을 발표한 ‘론리 아일랜드’를 다같이 보고 굉장히 웃기다고 생각했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가 그 정서랑 딱 맞았다. 세윤이가 제일 처음 떴던 캐릭터도 ‘복학생’이고 원래 복고적인 걸 좋아했다. 그래서 솔직히 론리 아일랜드 많이 베꼈다. (웃음) 그걸 한국적으로 바꾸면서 ‘보이스 투 맨’이나 ‘노이즈’의 옛 뮤직비디오들도 참고했다. 노이즈의 <상상 속의 너> 뮤직비디오 보면 완전 넘어간다. 아무 맥락도 없이 갑자기 다리 위에 서 있고 올림픽경기장에서 춤추며 노래한다. 그런 데서 영감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 처음 찍는 거다 보니 현장에서는 별로 안 웃겼다. 웃길 거 같아 시작했는데 이거 괜찮을까, 그러면서 특히 카메라맨하고 많이 싸웠다. (웃음)
-유세윤을 비롯해 장동민, 유상무 등과 동기라고 알고 있는데 대학 시절 그들은 어떤 친구들이었나. =다들 동아방송대학 동기들인데 정말 재밌게 지냈다. 지금껏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라고 할 수 있다. 만날 싸우는 카메라맨 친구까지 해서 그렇게 5명이 함께 자취를 했다. 거기에 각자 친구들까지 모이면 방에 20명 정도가 모였다. 그 많은 인간들이 밤새 마시고 놀고 하니까 날마다 MT였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떠들어대니 옆집 아저씨가 칼 들고 와서 좀 조용히 하라고 협박한 적도 있다. (웃음) 놀다 지쳐서 자려고 누우면 서로에 대해 장단점 말해주기 놀이도 하고 각자의 꿈 얘기도 했다. 난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영화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그때 내가 빌려온 불법복사 <링> 비디오를 같이 보기도 했다. TV에서 귀신 나올 때 난리도 아니었다. (웃음)
-그럼 혹시 당신도 개그맨 지망생은 아니었나. =전혀 아니다. 물론 세윤이나 동민이, 상무 모두 ‘얼굴은 네가 최고다. 당장 합격이다’ 그랬지만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시험 보고 다른 학교로 갔다. 그러면서 내가 학생일 때 걔들이 개그맨 되고 그러는 모습을 보면서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같이 영화 만드는 게 꿈이어서 좀더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MK픽쳐스에서 <소년은 울지 않는다> 제작부로 반년 넘게 있다가 영화가 좀 지연되면서 그만둔 적이 있고 이후 Mnet에 들어갔고 <UV신드롬>을 기획했다. 함께 뮤직비디오를 만든 것도 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유세윤에 대해 좀 특별한 기억이 있나. =다들 연극을 했는데 세윤이가 연기하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땐 우리 중에서 가장 조용하고 낯을 가렸다. 술자리에서 싸움이 나면 정작 자기 때문에 벌어진 싸움이라도 멀리서 관조하는 스타일이었다. (웃음) 또 카메라맨 얘기가 나오는데 우리 둘이 워낙 자주 싸우니까 그럴 때면 ‘자, 이제 가자’ 그러면서 힘든 상황을 피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오죽하면 동민이가 장난으로 세윤이 음주운전까지 시켜볼까 한 적이 있는데 철저하게 대리운전을 부르더라. 암튼 그때는 동민이나 상무가 제일 웃기고 세윤이는 거기 따라가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 연극을 보고는 뭔가 될 거 같은 느낌이었다. 더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이태원 프리덤> 등을 연출하면서 그래도 자신의 연출가적 욕심을 담고 싶었던 부분이 있나. =<이태원 프리덤>은 세트로 시작해 마지막은 이태원 야외 로케이션으로 끝내고 싶었다. 자정이 지나면 만취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10시쯤 갈 생각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자정 넘어 도착하게 됐다.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어서, 진영이 형한테 무지 욕먹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차분했다. 경호원 부를 돈이 없어 세윤이 소속사에서 10명 정도 나오고 했는데 나중에는 별로 다니는 사람도 없고 관심있게 지켜보는 사람도 없고 그냥 우리끼리 서로 철통경비를 하고 있더라. 아 세윤이나 진영이 형이 이 정도구나, 하고 느꼈다. (웃음) 아무튼 해보고 싶었던 건 마이클 잭슨 뮤직비디오 보면 팬들이 그를 쫓아 막 뛰는 장면 같은 거였다. 그걸 이태원 소방서에서 부감으로 찍었는데 대부분 스탭들하고 세윤이 회사에서 나온 분들이 열심히 뛰고 있더라. (웃음)
-또 다른 뮤직비디오에서는 어떤가. =<이태원 프리덤>에서 이태원 거리 장면이 그랬다면 <쿨하지 못해 미안해>에서는 얼음공장신이 개인적으로 욕심을 낸 장면이다. <록키>에서 나오는, 쇠고기 걸려 있는 냉동창고 같은 데서 찍고 싶었다. 동민이가 추천해준 곳을 갔는데 창고 안에 생고기가 아니고 다 포장육만 있고 야채나 삼겹살이 있었다. (웃음) 그래서 촬영을 미루고 내가 직접 인터넷으로 얼음공장을 찾았다. 다들 왜 굳이 얼음공장 장면이 있어야 하냐고 했는데, 연출자로서 아무래도 힘을 주는 ‘야마숏’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나 <이태원 프리덤>이 론리 아일랜드나 런던 보이스에 대한 패러디로 시작했다면 그래도 마지막에 가서는 ‘와 좋다! 괜찮다!’ 할 만한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었다.
-유세윤에 비해 상대적으로 UV의 뮤지나 당신이 덜 주목받는 데서 오는 섭섭함은 없나. =물론 있다. 가령 <이태원 프리덤> 같은 곡은 전적으로 뮤지가 다 한 건데 사람들은 박진영의 노래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고, 뮤직비디오도 책임 연출이 나인데 보조처럼 아는 경우가 많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는 회사에 투잡처럼 비쳐지기 미안해서 가장 좋아하는 히치콕 감독을 본떠 가명인 ‘유치콕’으로 해달라고 했는데 결국 크레딧에는 넣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뮤직비디오가 빵 터지면서 나온 인터뷰들을 보니 ‘연출을 도와준 형이 있다’ 그런 얘기들만 있더라. 물론 UV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기자가 대충 쓴 게 퍼져나가서 그런 거겠지만 많이 섭섭했다. 개인적으로는 ‘유치콕은 누군가’ 뭐 그런 얘기가 나오길 바랐건만. (웃음) 암튼 궁극적으로는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다. 3년 안에 유세윤 주연의 장편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다. 개인적으로는 주성치 같은 코미디영화도 좋아하지만 장 피에르 멜빌의 누아르영화도 좋아한다. 그래서 코믹 누아르 컨셉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지금은 <UV신드롬>에서 나와 <슈퍼스타K> 시즌3에 참여하고 있다. 이후 계획은 어떤가. MBC <위대한 탄생>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도 있을 것 같다. =4월24일 부산예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방송은 8월부터 될 거고. 요즘 거의 매일 밤샘이라 정신이 없다. <위대한 탄생>을 특별하게 신경 쓰는 부분은 없다. 늘 그래왔듯 무대나 가수, 스타일에 대한 명확한 잣대가 있을 수 없다. 시즌3에서도 여전히 개성 넘치는 친구들이 돋보일 거고 역시나 즐겁게 만들어질 것 같다(그러는 가운데 옆으로 1시즌 준우승자 조문근이 지나감. 시즌3과 관련한 뭔가가 있다고 함.-편집자).
-혹시 당신을 끌어들인 것은 <슈퍼스타K>에 유머를 불어넣기 위한 의도는 아닐까. =그런가? 그냥 PD나 작가 등 일할 사람이 많이 필요해서 그런 거 아닐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