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경관에서 미적 성취를 인위적으로 조합한 대지미술은 미술관에 갇힌 정태적 조형미에 회의를 품고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탄생했다. 환경문제라는 선한 메시지까지 탑재한 대지미술의 활동 무대는 자연 자체였다. 한편 예술가의 간섭없이 자연 스스로 조형적 밑그림을 그리는 ‘사건’도 터져 나온다. 재해가 일그러뜨린 자연 형상을 예술이라 미화하는 이는 없다. 그건 엄연한 비극일 따름이니까. 예기치 않은 자연 격동이 지나간 흔적은 웅대한 스펙터클을 남기는데, 그중 최상의 드라마는 분노한 자연에 부딪혀 문명의 한 귀퉁이가 일그러질 때다. 자연 재난을 소재로 삼은 무수한 허구적 창작물에 대중이 쉽게 길들여진 탓일까. 절대다수의 대중/시청자는 재해 현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정방형 실내에 안전히 들어앉아 네모진 모니터로 재해 전말이 압축 편집된 화면을 관전한다. 그것은 정방형 전시실에서 네모난 액자를 응시하는 관전의 보편 논리를 반복하는 것이다. 형식만 두고 볼 때 모니터로 전달된 재해 화면은 엄연히 관람 대상이다. 더구나 ‘자연과 문명의 충돌’이라는 친숙한 자막과 해설까지 덧붙으면 관전 대상에 대한 인본주의적 논평까지 더해진 꼴이니, 번거로운 양심의 가책 따윈 훌훌 털고 감상에 몰입할 수 있다. 오죽하면 2010년 5월 멕시코만 원유 유출사고 보도는 유출된 석유로 다채롭게 물든 바다 사진을 게재한 뒤, 그 밑에 이런 지문을 삽입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 채 이 바다를 본다면 그저 아름답게 보일것이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중앙아메리카를 강타한 열대성 폭풍 아가타의 후유증으로 60m 깊이의 원형 구멍이 팬 과테말라 다운타운을 찍은 외신 항공사진은 부족함없는 볼거리여서 비애감 따윈 느낄 겨를도 없었다(인명피해는 없었단다). 자연재해의 급박함이 실감되지 않는 실내에서 재난 기록물을 응시할 때 맛보는 쾌감은 지난 미술사에서 숱하게 반복된 바 있다. 에도시대 일본 목판화계 명장 호쿠사이의 <파도>는 쓰나미 앞에서 풍전등화 꼴이 된 인간의 위기를 묘사한다. 당대 일본인이 자연에서 겪었을 실화를 옮겼을 터, 일종의 진경산수인 거다. 직사각 프레임에 갇힌 보트 세척을 삼키는 초대형 파도의 위용 앞에서 관자가 느끼는 감정은 실존적 위기감이나 경계심보다는 자연의 괴력을 극대화한 재현술을 향한 미적 숭고일 것이다. 우키요에의 사각 틀은 모니터의 사각으로 진화했고, 관찰 주체도 동시대인으로 갈아탔을 따름. 자연재해의 괴력을 가감없이 중계하는 모니터 스크린은 현대 재앙의 진경산수를 보여준다. 그림의 배경으로 동원된 풍경이 단독 장르(풍경화)로 독립한 시점은 서양에서 15세기경이다. 동양도 팔경(八景)을 내세워 풍경화의 자부심을 세웠다. 그러나 오늘날 신사실주의 풍경화 혹은 현대적 진경산수라 칭할만한 건 현대 문명사회가 직면한 자연재해 스펙터클을 통해서다. 비록 그 누구도 그걸 ‘감상한다’ 말하진 않지만. 긴박감과 경탄을 숨긴 채 전세계에서 반복 관람한 수만 계산하면, 아마 호쿠사이의 <파도>를 훨씬 능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