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일기>의 주인공인 이 청년의 이름은 승철(박정범)이다. 순한 외모를 지녔고 착하고 성실한데 삶이 늘 힘들다. 아마도 그가 탈북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돈을 벌고 생계를 이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벽보와 플래카드를 붙이는 일이지만 그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사장은 일을 똑바로 하라며 막말을 하고 동네의 건달들은 승철이 눈에 띄기라도 하면 자기 구역 운운하면서 이곳에 벽보를 붙이지 말라고 걷어차며 협박한다. 그러나 승철은 아직 남한식의 독기를 익힌 것 같지 않다. 그는 때리면 맞고 더 맞을 것 같으면 도망가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승철의 친구는 딱 둘뿐이다. 승철을 돌봐주는 같은 탈북자 출신의 경철(진용욱)과 승철이 끔찍하게 아끼는 강아지 백구. 그런 승철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 숙영(강은진). 승철은 그녀가 다니는 교회도 다니고 그녀가 일하는 노래방에서 함께 일하며 가슴앓이를 하지만 선뜻 고백할 용기가 없다. 그의 사랑은 이루어질 것인가. 아니, 그러기는커녕 경철과 관련된 일 때문에 승철은 돌이킬 수 없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
감독 박정범은 전승철이라는 그의 실제 탈북자 친구를 모델로 단편 <125전승철>을 만든 경험이 있으며 그 의지와 관심을 연장하여 <무산일기>를 완성했다. 감독은 열정적으로 주인공까지 맡았으며 발군의 연기 실력까지 보였다(게다가 탈북자를 관리하는 형사 역의 배우가 한명 출연하는데 박정범 감독의 친아버지다). 탈북자의 삶을 그는 친구에게 자세히 들었고 또 알게 됐을 것이다. 외면할 수 없이 존재하는 현실. 감독은 그걸 영화로 만드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그릴 것인가? 영화가 선택한 방식은 비정하게도 그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이다. 전승철의 무능. 승철은 영화 속에서 착하지만 무능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영화가 주장하는 바, 그건 승철의 무능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가 남한의 ‘무산계급’이기 때문에 덮어쓴 무능이다. 그러니 무엇이 그를 무능하게 만들었는가. 영화는 그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시종일관 영화는 별다른 효과에 의탁하지도 않거니와 개입하기도 거부하면서 오로지 카메라와 인물의 긴장감만으로 승철의 삶을 좇아나간다. 이 영화에 이창동 영화의 주제와 다르덴 형제 영화의 미학이 강하게 엿보이는 것을 지적할 수 있을 텐데, <무산일기>의 장점은 대개 그들 영화의 장점을 승계한 것 같다. 혹은 더 투박하지만 자기 방식의 절실함이라는 미덕을 지녔다. 2010년에 발견된 가장 뛰어난 한국 신인감독의 영화라는 평가를 얻었으며 각종 영화제를 순례한 다음 지금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