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시얼샤 로넌)는 열여섯살 살인무기 소녀다. 새로운가? 글쎄. 이미 우리는 뤽 베송의 <니키타>(1990)와 <킥애스: 영웅의 탄생>을 경험한 바 있다. 오히려 <한나>에서 주목해야 할 건 소녀 여전사라는 소재가 아니라 조 라이트라는 이름이다.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의 서정적인 연출가가 어떻게 액션영화를 주조했을까 하는 궁금증 말이다.
열여섯살 소녀 한나는 전직 CIA 첩보원 아버지인 에릭 헬러(에릭 바나)와 함께 핀란드의 숲에서 살아왔다. 매일매일 고된 훈련을 통해 그녀는 외국어와 정보를 자유롭게 다룰 줄 알고 홀로 거대한 순록을 잡는 병기로 길러졌다. 그녀의 목표는 엄마를 살해하고 자신을 쫓는 마리사 위글러(케이트 블란쳇)를 죽이는 것이다. 일부러 CIA에 잡힌 한나는 임무에 실패하고, 도망간 아버지를 베를린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모로코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신인 세스 록헤드의 각본을 영국 첩보물 시리즈 <스푹스>의 데이비드 파가 매만진 결과물은 여전사가 주인공인 코믹스에 <본 아이덴티티>를 결합한 듯하다. 물론 조 라이트는 보통의 할리우드 고용감독처럼 이야기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는 액션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처음 마주하는 소녀가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세계의 감각을 세심하게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오만과 편견>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련한 역광이 수시로 쓰인다). 소재와 연출이 불균질하게 뒤섞이는 게 <한나>의 매력이긴 하지만 그림 형제의 동화적 모티브를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갖다붙인 클라이맥스는 다소 맥이 빠진다. 오히려 하드보일드하게 밀어붙였더라면 불균질한 매력은 더 폭발적인 힘을 얻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