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30일, 김의석 영진위 위원장 직무대리가 영화진흥위원회의 새 수장으로 정식 취임했다. 영화계는 현 정부에서 세 번째로 임명장을 받은 그를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임기를 채우지 못했던 두 전임 위원장이 대학교수 출신이었다면, 김의석 위원장은 <결혼이야기> <청풍명월>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 출신인 만큼 지난 4기 영진위가 소홀했던 영화계와의 소통관계를 다시 정상화시킬 것이란 기대다. 또한 정치적 공방과 심사과정에서 빚어진 논란으로 긴급기자회견을 거듭했던 때와 달리, 영진위의 항로를 안정화해줄 것이란 예감도 있다. 무엇보다 지난 3년간 표류해온 영진위의 영화진흥정책을 정상화시킬 것이란 기대가 크다.
하지만 한 개인에 대한 기대가 그가 놓인 상황에 대한 우려까지 뛰어넘는 건 아니다. 지난 영진위에서 목격한 것은 전임 위원장들의 실책뿐만이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의 기침에 몸살을 앓는 영진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영진위의 바깥에서 볼 때 김의석 위원장은 문화부와 영화계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할 삼각관계의 위치에 놓여 있는 셈이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처럼 그가 “임기를 다 채우는 위원장”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의 임기 동안 영진위가, 그리고 한국영화계가 어떤 모습을 갖게 될지가 관건이다. 지난 4월4일, 위원장 취임 뒤 첫 내부회의를 가졌다는 그날, 김의석 위원장이 바라보는 비전에 대해 들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이 사무실에서 일했다. 그래도 지금의 소감은 다를 것 같다. =아무래도 편하지는 않다. 전임 위원장 두분이 임기를 못 채웠고, 많은 질타도 들었다. 나에 대해 기대를 해주는 만큼 부담도 크고 걱정도 많다. 어제 주말에도 긴장이 풀리지 않더라. 하지만 직무대행을 4개월하면서 나름 상황을 파악하고 업무를 이해했기 때문에, 새로 시작하는 입장에서 느낄 만한 두려움은 덜한 것 같다.
-영진위의 위원장으로 지원한 계기에 대해 묻고 싶다. 사실 좋을 게 많은 자리는 아니지 않나. =전주영상위원회 일도 계속 할 수 있었고, 영화감독으로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도 있었다. 거의 막판에 생각이 바뀌었다. 한번은 영진위 지방 이전 문제로 부산에 출장을 갔는데, 이전에 생각하던 것보다 우려되는 마음이 커졌다. 솔직히 영화인이 원하는 이전은 아니지 않나. 이전을 하는 과정에서 자칫하면 영진위의 위상이 위축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느낀 걸 구체적으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심하게 이야기하면 영진위의 존폐에 대한 이야기도 어디선가 흘러나온 적이 있지 않나. 누군가가 영화를 아는 사람이 맡아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약간의 욕심이랄까, 그런 의욕이 생긴 거다. 출퇴근하는 게 고민이기는 했는데(웃음)… 그래도 3년이니까 한번 해보자고 한 거다.
-위원장 공모 절차상 면접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 자리에서 가장 자신있게 강조한 부분은 무엇이었나. =중국시장 개척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로서는 머리가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게 있었다. 1992년 <결혼이야기>로 데뷔한 뒤 2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영화가 급성장했지만 지금은 결국 내수에 한계가 온 상황이다. 제작비가 내려가고 스탭들의 처우문제도 커지고, 대기업의 독과점 문제가 지적되는 것도 시장이 좁기 때문이라고 봤다. 결국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이 이제는 해외 진출이고, 가장 먼저 개척해야 할 곳이 중국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9월에 중국에 갔는데, 수치들이 그걸 증명하더라. 연초에 1천개였던 3D 스크린이 연말이 되니 2500개로 늘었더라. 지금은 전체 8천개인 스크린이 5년 뒤에는 3만개가 돼서 미국시장을 넘는다는 연구도 있다. 하지만 수요는 넘치는데 감독, 배우, 시나리오작가, 스탭 같은 인프라는 부족한 상황이다. 누군가가 들어가려면 지금 들어가야 하는데, 다행히 한국영화에 대해서는 우호적인데다가 몇몇 스탭은 이미 중국에 진출해 있다. 이런 상황을 활용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다. 지난 2, 3년간 영진위가 다른 데에 발목이 잡혀서 시대를 못 따라간 게 있었다. 그런 차원에서 이야기했었다.
-지난 4기 때 결정된 사업들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직무대행으로 있는 동안 생각한 바가 있을 것이다. 가장 중점적으로 재검토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안은 무엇인가. =일단 2011년 진흥사업계획은 지난해 11월에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후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있었고, 장관님이 영화인들과 면담하면서 계획에서 빠졌던 몇몇 사업은 다시 회복됐다. 기획개발비 지원과 시나리오 마켓 사업이다. 독립영화 지원을 직접지원으로 하는 것도 국회에서 살려냈다. 장관님은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책과 시스템에 대한 정비가 별개의 사안으로 가야 한다고 했는데, 나도 동의한다. 현재 간접지원 형태로 구성된 정책도 2012년에 다시 의견을 수렴해서 방향을 찾아갈 계획이다. 올해는 20억원 미만의 저예산영화에 대한 지원이 인건비를 통한 간접지원으로 진행되는데, 내가 내부적인 조건을 하나 더 제시한 상태다. 평균 6천만원 정도의 인건비를 지원하는데, 이것을 절약한 돈 가운데 50%를 다음 영화의 기획개발비로 쓰도록 용처를 제한하는 것이다.
-영화아카데미 출신이고 교수로도 재직했다. 영진위 내 부서로 바뀐 영화아카데미에 대해서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 =그 문제를 염두에 둔 건 아닌데, 내가 온 입장에서 조직 개편의 필요성은 있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미래지향적인 목표를 두고 있고 아카데미도 검토대상이 될 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카데미의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물론 시대의 변화에 따른 발전방안을 다시 점검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최근 독립영화전용관이 인디플러스란 이름으로 직영체제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진행 절차에 많은 비판이 있었다. 신임위원장이지만 사실상 현 위원장으로서 배경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시간도 부족했고, 영진위에서 좀더 숙고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지난 1년간 운영했던 단체에 대한 평가는 있었다. 점수도 나왔고 그걸 가지고 직영 전환의 근거로 삼은 건 맞다. 다만 물리적이고 행정적인 인수인계만 생각했던 것 같다. 뒤늦기는 했지만 이후에 사안의 심각성을 알고 공청회를 했고 이번주에도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의 운영방안에 대해 또 공청회를 연다. 현재로서는 일단 직영을 거스를 수는 없고, 장기적으로 어떤 방식이 모두에게 유익한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본인 스스로도 현장과의 소통을 가장 큰 목표로 이야기했다. 3기의 소통방식이 소위원회였다면 4기의 소통방식은 ‘대토론회’였다. 앞으로의 소통방식은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 =4기 들어오면서 소위원회가 많이 정리됐다. 말하자면 소통의 창구가 시스템화되어 있었는데, 차단되어 있었던 거다. 소통이라는 것도 시스템화하도록 해야 하고, 영화인의 화합을 이끌어내는 방식도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본다.
-2011년 진흥사업안이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영화제작지원사업에서는 직접지원이 간접지원으로 전환됐고 이에 대한 영화인들의 비판이 많았다. 지난해 사업안이 나왔을 때는 부위원장으로 활동을 할 때였다. 당시에는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 =내가 들어온 게 7월이었다. 이미 직전인 6월 말에 2011년 예산안이 위원회에서 통과된 상황이었다. 나로서도 이걸 뒤집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사를 제대로 하면 되는 거지 제도를 바꿀 문제는 아니니까.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많은 노력을 했었는데 불가항력적인 요소가 있었다.
-위원으로서 봤을 때, 당시 위원회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사실 전임 위원장이 낙마하게 된 이유에는 당시 위원들의 적절한 견제가 없었던 것도 있다. =예민한 부분이기는 한데, 전 정부에서 문화부와 영진위의 관계와 이번 정부에서의 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차이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강하게 드라이브가 걸리면서 잡음이 크게 생겼고, 그 상황에서 영화계가 희생자가 됐다고 본다. 그런 과도기적인 시점에서 위원인 나도 힘들었고 한계를 느낀 부분도 있었다.
-위원장의 의지가 영화인과 맞닿아 있다고 해도 방금 말한 구조적인 상황에서 문화부의 간섭없이 의지가 관철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느 정도는 현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몇번 가보니까 그림이 나오더라. 영진위의 경우는 영화발전기금 운영을 국회에서 승인해야 하는 상황이고, 문화부가 의지를 가져도 기획재정부에서 반대하면 안되는 구조다. 국회에서 영진위에 대한 문제를 지적해도 이에 대해 대부분 문화부 장관이 책임성 발언을 하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적인 독립과 자율을 이야기하는 건 현실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4기에서 정해진 사업의 재검토 등의 사안을 의지대로 밀고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상 문화부에서 결정한 부분들이 크지 않나. =문화부와 영진위의 신뢰관계에 대한 문제라고 본다. 직원들과 맨 처음 이야기할 때도, 영진위가 따로 있는 이유는 일반 공무원에게 없는 자율성과 전문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는 영화계와의 신뢰관계도 무너져 있는 상태다. 문화부에서 봤을 때도 뭔가를 해주는데도 욕을 먹는 상황인 거다. 그런 자승자박의 결과를 영진위가 스스로 초래한 게 있다.
-최근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영진위는 ‘미흡’ 판정을 받았다. 전임 위원장의 문제가 없었고, 직접지원제도를 간접지원제도로 바꾸지 않았어도 같은 판정을 받았을까? 그런데 사실 위원장을 선임한 건 문화부고, 지원정책의 성격을 바꾼 것도 문화부다. 순진하게 볼 때, 영진위가 영화계의 신뢰를 얻는 게 문화부의 신뢰를 얻는 길이라면, 지금 상황에서는 딜레마에 놓여 있는 듯 보인다. =그게 숙제인데, 답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같다. 영화계가 전 정부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다면, 그 반대급부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행착오가 지난 과도기적인 시점에 있었다면, 이제는 그것이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다는 걸 아는 성숙한 단계로 진입해야 할 거다. 다행히 이제는 구름이 걷히고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일단 장관님이 바뀌었고, 현실문제를 잘 인식하고 있다. 정치적 색깔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발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일치한다. 문화부쪽 실장도 영진위의 자율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먼저 했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임기를 다 채우는 위원장이 되겠다”고 했다. 임기가 끝날 무렵에는 어떤 위원장으로 남기 바라나. =농담으로 한 이야기인데, 농담이 되지를 않더라. (웃음) 사실 이 자리는 잘해봐야 본전인 게 맞는 것 같다. 나도 사람이니 누군가가 칭찬을 해주면 싫지는 않겠지만, 나 스스로의 동기부여와 만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흔히 하는 말로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임기가 끝날 때는 최소한 스스로 떳떳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