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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한국영화계의 흥미로운 얘깃거리였길 <최종회>

외부자와 내부자 ‘사이’ 비평가로서의 지난 8년을 돌아보며

<오아시스>

‘외부자가 본 한국영화’ 같은 주제로 신문사나 잡지사로부터 청탁을 받으면 항상 잠깐 망설이게 된다. 정말 ‘외부’의 시선을 원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10여년 넘게 나는 한국영화계에서 여러 일을 해왔다. 그러는 동안 극장에서 개봉하는 한국영화는 거의 다 보았다. 그 결과 고향인 미국의 영화계보다 한국영화계 사정에 더 빠삭하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내가 ‘내부’의 시선을 대표한다고 볼 수도 없다. 이 칼럼의 다른 저자들인 데릭 엘리, 아드리앙 공보, 스티븐 크레민은 모두 아시아에서 한동안 살며 그 문화를 배웠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외부자와 내부자 ‘사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이’의 공간은 때로는 괴롭기도 하지만 무척 흥미롭다. ‘사이’에 위치한 비평가와 기자들은 외부자도 아니고 내부자도 아닌 다른 특정 관점을 갖게 된다. 그러나 때로 사람들은 이런 ‘사이’의 관점에 대해 오해하기도 한다.

다른 문화권의 영화를 볼 때 누구나 여러 문제들에 부딪힌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번역 과정에서 언어의 뉘앙스가 전달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해당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혼란이 빚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오아시스>의 도입 부분에서 설경구가 두부를 사먹는 의미는 오해받기 쉽다. 내가 느끼기에는, 문화적인 지식의 부족으로 생기는 이런 오해는 예상외로 적게 일어난다. 더 중요한 것은 언어적인 문제다. 특히 자막의 질이 낮을 경우에는 생각보다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상적으로 말해, ‘사이’ 비평가는 이런 경우에 영화를 이해하는 데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들의 역할은 글을 통해 관객이 영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나 ‘사이’ 비평가들이 갖게 되는 특유의 관점은, 지적인 산물만이 아니라 다분히 감정적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영화를 볼 때 나의 정체성은 영화에 대한 내 감정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처럼 규모는 크면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는 내가 딱히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미국 문화의 일면을 드러낸다. 이 영화가 전세계에서 상영되면서 그런 미국 문화의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낼 거라 생각하면 이 영화의 약점들은 개인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러나 내가 한국사회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특정 단면을 드러내는 한국영화를 볼 때, 나는 좀더 이성적으로 영화에 접근할 수 있다. 나와 한국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이런 ‘중간’ 정도의 거리가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더 보편적으로 말하면, ‘사이’ 비평가와 기자들은 일정 정도의 자유와 독립을 누릴 수 있다. 내부자가 했으면 엄청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판을 나는 좀더 결과에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 갖는 일정 정도의 거리 덕분에 한국 사람들의 전반적인 의견에 별로 좌우되지 않아서, 한국영화를 논할 때 좀더 신선한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 지난 8년간(2003년 하순부터 연재 시작, 이번호가 마지막-편집자) 외신기자클럽의 우리 네명은 아마 한국 독자들이 보기에 색다르거나, 때론 말도 안되는 의견이나 제안들을 해왔으리라. 그러나 우리의 다양한 관점이 한국영화계에 나름 흥미로운 얘깃거리를 제공해왔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시간이 지나 한국사회와 영화산업이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면 더 많은 비평가와 저자들이 그들만의 ‘사이’ 관점을 피력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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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