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은 말했다. “내가 보기에 인간들은 고통 속에서 삶을 인지하는 것 같아.” 이 통찰은 야구와 야구팬의 관계에도 고스란히 대입할 수 있다. 상당수의 야구광들은 고통 속에서 야구를 인지한다. 그러니까 ‘인생 역전타’ 운운하며 승리의 스포트라이트에만 삶을 견주는 건 사실 허황되기 짝이 없는 비유다. 9회말 투아웃에 짜릿한 끝내기란 그야말로 로또. 뜬공이나 내야땅볼, 삼진으로 허망하게 물러나는 70% 이상의 타석과 연간 절반가량의 패배를 견디면서도 또 내일의 시합을 기다리는 것. 그게 야구팬이다. 야구소설로서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이 지닌 최고의 가치도, 야구와 삶의 공통분모가 그 쓰라린 도정에 있다는 것을 직시하는 데 있다. 서울대 야구부 출신의 주인공 김지웅은 직장도 잃고 이혼까지 당해 앞날이 막막한 35살의 남자. 오랜 꿈인 영화 제작을 통해 재기를 모색하던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서울대 야구부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써보려 하나, 팀의 핵심인물인 야구부 선배 장태성의 종적이 묘연해 난항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소설은 바닥에서 새 출발을 꿈꾸는 지웅의 현실과 어처구니없는 패배들로 점철된 90년대 말 서울대 야구부의 회상, 그리고 시대별 한국 프로야구의 풍경을 번갈아 오간다.
1977년 창단 이래 199연패라는 한국 스포츠 사상 최다 연패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서울대 야구부는 2004년 9월 광주 송원대를 상대로 2 대 0의 기적 같은 첫 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그 유일무이한 승리의 순간이 아니다. 1승 이후 다시 연패가도를 달리고 있는 서울대 야구부 출신들의 남루한 삶을 지탱하는 건 그 승리의 기억이나 인생역전의 강박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 원하는 공을 던져야 좋은 투수가 된다’는 감독의 가르침이다. 어차피 삶은 길고, 거꾸로 매달아도 야구는 계속되는 법. 특히 몇년째 우승 근처에도 못 가본 하위권 팀에 죽어라 목매달고 있는 야구팬들에게 녹록잖은 위로를 선사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