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와 불안감으로 가득했던 지난해와 달리 요즘 충무로는 나름의 활기가 도는 느낌이다. 지난 연말부터 최근까지 몇몇 한국영화가 기억에 남을 만한 성공을 거뒀고, 지금도 꽤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덕에 그런 인상이 박힌 듯하다. 그런데 새로운 자본이 유입되지 않았고 해외시장과 부가판권시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았으며 현장 환경이 썩 좋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같은 낙관론의 근거가 허약하지 않나 하는 의심도 든다. 어쩌면 우려와 불안감을 더이상 갖는 게 버거워 우리 스스로 착시현상을 만들어내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해 창간호를 통해 소개했던 ‘충무로 팔팔세대’의 지난 1년을 돌아본 것도 이런 궁금증 때문이다. 개중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이도 있었고 다니던 회사에서 승진한 분도 있었지만 영화 바깥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경우도 상당했다. 지난해 소개했던 50명 중 12명이 설문에 응답하지 않았고 나머지 38명 중에서도 다른 분야로 옮긴 이가 여럿이라는 사실은 한국영화계가 아직 ‘정상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가장 영향을 준 1년간의 영화계 키워드는?’이라는 두 번째 질문에 돌아온 ‘희생’, ‘몇몇 감독의 채찍’, ‘부익부 빈익빈’, ‘예산 부족’이라는 답은 가슴을 콕 찌른다.
‘시나리오작가의 죽음, 그리고 영진위 파행 문제.’ <씨네21> 영화평론가이기도 한 송경원은 우리의 두 번째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그 두 가지 사안이 관계없다고 적었지만, 사실은 매우 명징한 관계가 존재한다. 이 정권이 들어선 이후 임명된 두명의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영화계의 살림살이보다는 이데올로기(영화계 좌파 척결!)에 몰두했다. 아니면 괜한 청탁으로 공정성에 흠집을 냈거나. 그러는 동안 충무로는 정체했다. 대기업 중심구도는 확고해졌고 제작사는 사라졌고 예술·독립영화는 표류했다. 무엇보다 젊은 스탭들이 현장을 떠나거나 자신의 삶을 비관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인인데다 영화아카데미 교수로서 영화청년들을 가르쳤던 김의석 감독이 영진위 위원장으로 취임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장 분위기와 젊은 영화지망생들의 꿈을 잘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위원장 대행 시절 문화부 관료들에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평이 있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위원장 직함을 단 이상 좀더 책임있게 활동을 펼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한 가지,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중국시장 개척이 한국영화의 활로라고 말했는데 거기에만 매달리다간 별 성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 또한 이를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물론 충무로 팔팔세대의 당면문제가 모두 영진위에서 비롯됐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 앞에 놓인 수많은 난관은 기본적으로 그들 스스로 극복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이 팔팔하게 충무로를 누빌 수 있도록, 그래서 한국영화가 새로운 기운 속에서 재탄생하기 위해선 영진위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틀림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