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이탈리아영화 한편이 떴다! 해학과 풍자가 날카로운 비수마냥 가슴에 꽂혀 숨막히게 하거나, 끝없는 상스러움과 무식함에 너무 기가 막혀 배를 잡고 웃게 하는 영화다. <보리스-필름>(Boris-il Film)이라는 제목의 이 기막힌 영화는 4월 첫째 주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4위로 성큼 올라섰다. 3월 한달 동안 이탈리아 영화계는 수영장과 하인이 딸린 로마의 거대한 저택에 사는 부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막시밀리아노 브루노 감독의 <아무도 나를 판단할 수 없다> (Nessuno mi puo giudicare)가 계속해서 1위 자리를 지키며 좋은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자코모 차라피코, 마티아 토레, 루카 벤드루스콜로 감독의 영화 <보리스-필름>이 1위 자리를 빼앗는 건 이제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이탈리아 영화계는 겨울에 주로 코미디영화를 선보인다. 봄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영화들이 겨우 영화관을 지킨다. 지겨우리만치 습도가 높았던 지난겨울 동안 이탈리아 관객은 뻔하다뻔한 영화들을 보다가 기진맥진한 상태가 됐다. 올봄에도 별다른 영화가 없을 거라 낙담하던 관객에게 <보리스-필름>은 개봉 전부터 시끌벅적한 화제를 낳았다. 이유는 이 영화가 2007년부터 이탈리아의 공중파 <폭스채널>에서 상영됐던 TV시트콤 <보리스>를 원작으로 하기 때문이다. <보리스>는 방영 당시 대단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트콤 <보리스>는 TV드라마 제작 현장을 무대로 한 작품이다. 정신없는 현장을 배경으로 권력을 쥔 자들과 권력 아래에 있는 자들의 싸움, 선과 악의 대결을 풍자적으로 그려냈다. 한 장면에서 제작사는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다른 시트콤으로 바꿔버릴 거야!”라며 감독을 협박하고, 여배우는 나이를 속이기 위해 감독과 몸싸움을 벌인다. 이 시트콤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모호한 현장에서의 진실과 거짓 사이를 드나들면서 절묘하게 스스로를 풍자하는 각본 덕분이었다.
<보리스-필름>은 무대를 TV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영화 제작 현장으로 옮겨왔다. 루카 벤드루스콜로 감독은 “연기력이 없더라도 무조건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고, 제작사가 영화 현장에 거침없이 끼어들고, 시청자의 질나쁜 요구를 수용해서 시장에서 잘 팔리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영화. 그런 것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의 포부는 훌륭하게 현실화됐다. <보리스-필름>은 무식하면서 똑똑하고, 또 용감한 영화다. 이탈리아영화를 보면서 이토록 자유롭게 웃어본 게 대체 얼마 만인가 싶을 만큼 말이다.
“이탈리아 현실은 이 영화보다 더 하지”
<보리스-필름>의 제작자 겸 주연배우 프란체스코 판노피노 프란체스코 판노피노는 영화 속 감독 레네 페레티를 연기한다. 레네 페레티는 붉은 물고기 ‘보리스’가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어서 항상 어항을 들고 다닌다. 프란체스코 판노피노를 이탈리아 국영방송 <라이2>에서 만났다.
-시트콤과 영화의 다른 점은. =감독도 이야기도 전부 똑같다. 단지 배경이 되는 현장이 드라마에서 영화로 바뀌었을 뿐이다.
-제작사의 허세를 상당히 비판하는데 당신의 제작사는 뭐라고 하던가. =이 영화는 나를 포함한 영화와 관계된 모른 사람을 조롱한다. 제작사도 마찬가지다. 되는 것도 없고 되지 않는 것도 없는 나라에서 멈춰서서 찍은 로드무비 같은 영화다.
-어떻게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나. =TV시리즈를 만들고 나니 의외로 관심이 열광적이었다. 우리는 시트콤을 시작할 때 업계의 나쁜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 나쁜 사람들이 갖는 습관, 속성 그리고 나쁜 시트콤이 갖는 습관과 속성, 나쁜 영화가 갖는 습관과 속성. 나쁜 사람들이 나쁜 시트콤을 만들었고 이제 나쁜 영화도 만들고 있다. 나쁜 것들은 진화하니까.
-이탈리아의 현실을 절대 용서하지도 감추지도 않는다. =용서할 수 없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청탁을 들어주고, 그들을 통해 낙하산을 타는 사람들을 용서해야 하나? 이탈리아 현실은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더 무지막지하다. TV드라마와 영화는 전부 비즈니스다. 게다가 그런 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 부정과 부패를 용서해서는 안된다.
-자연스러운 연기와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이 영화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빠른 흐름과 제스처가 잘 맞아떨어진다. 입술에 작은 미소를 띠고 심장을 멈추고 봐라! 무지하고 멍청해도 볼 수 있는 영화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