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죽으면 좋겠다. <미스터 피넛>은 어느 남편의 공상에서 시작한다. 얼마나 사이가 안좋으면 아내가 죽기를 바라느냐고? 사실 데이비드 페핀은 아내를 사랑했고, 사랑한다. 사랑의 깊이와 관계없이, 그는 아내의 죽음을 상상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그가 아내에게 느끼는 욕망과 불안이 한차례 고루 묘사되고 나면, 이번에는 얼마 뒤의 시간으로 점프한다. 데이비드의 아내가 죽었다. 한번 먹으면 생명이 위험한 알레르기가 있는 피넛 버터를 먹고 죽었다.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은 남편 데이비드. 그런데 그사이, 그의 아내 앨리스는 1년간 다이어트에 대성공해 아름답고 자신만만한 여인이 되었지만 두 부부는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이 죽음을 수사하는 두 형사는 데이비드와 앨리스의 결혼생활의 내막을 수사하는데, 이들또한 집에 가면 아내와 문제가 있는 건 매한가지다. 결혼을 결심했던 때의 아내는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름답고 섹시하고, 결혼해서 평생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여자는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미스터 피넛>은 유부남의 시점에서 결혼생활을 복기한다. 아름다웠던 기억도 끔찍한 현실도 나온다. 애덤 로스는 남편들에게 자조적이어서 코믹한 목소리를 부여했다. 부부 관계는 남의 이야기일 때만큼은 흥미진진하다. 여자 시선에서 보면 어디까지나 자기변명에 불과한 다른 여자에 대한 상상과 그에 따른 행동은 짜증나는 한편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남자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을 꿈꾼다. 심지어 다른 여자가 있고 없고는 필수조건이 아니다. 그들은 백지 에서 시작하는 삶, 깨끗하게 사라져 중간 기착지의 비행기에서 내려 그랜드래피즈나 내슈빌 같은 낯선 도시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를 꿈꾼다. 즉 결혼하기 이전을 꿈꾼다.” 그러면 여자들은 어떨까. “그 여자는 남편을 버리고 떠날 거란 걸 저는 알았어요. 우리 여자들은 결심했다는 걸 알기 훨씬 이전에 이미 결정을 내려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면, 배가 바다를 바라보며 공상에 빠져 있는 동안 항구는 이미 모든 기능을 상실하고 운영 중단 상태에 빠져버린다는 뜻. 그러니 언제나 대화는 타이밍이 맞지 않고, 시선은 서로에게서 15도쯤 비껴 있게 마련이며, 누구 잘못이랄 것도 없이 짜증이 솟구쳐서 그저 이 상황에서 가장 빨리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상상하게 된다. 그래서 남편들은 아내가 죽기를 소망한다. 가능하다면, 같이 바닷가에 갔을 때 아내가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는 진심으로(그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긴 하다) 슬퍼하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아내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아내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생활에 대한 달콤하고도 씁쓸한 통찰을 담은 동시에 미스터리 소설로도 흠잡을 데가 없다. 애덤 로스의 데뷔작인 <미스터 피넛>은 <뉴욕타임스> <뉴요커>를 비롯한 매체에서 ‘2010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