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한국영화 시상식이 평양에서 열린다고 가정해보자. 지난 2년간 북한의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그저 그런 북한 영화가 그 상을 수상하고 북한 미디어가 그에 대해 극찬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그랬다면 남한 영화계는 그런 수상을 웃음거리, 혹은 남한 영화계에 대한 농담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한때 중국어 영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상이었던 대만 금마장상이 지금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지난 2년간 중국 영화사들은 그저 그해 최고의 영화라 생각되는 영화를 제출하면 된다고 생각해왔으나, 번번이 그 영화들은 의도는 좋으나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대만영화들에 상을 빼앗겨왔다. 그 대만영화들은 대만의 정체성을 소리 높여 외친 덕에 수상한 듯했다.
아시아에서 만들어지는 프로파간다 영화라 하면 보통 베트남, 중국, 북한 등의 국영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지는 혁명 영웅을 다룬 전쟁영화, 행복한 소수민족을 다룬 영화, 헌신적인 선생님들을 다룬 전기영화 등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현재 대만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 역시 일종의 프로파간다 영화라 생각할 수 있다.
2010년 타이베이에서는 36편의 대만영화가 상영됐다. 그해 대만영화 한편이 타이베이에서 벌어들인 평균 수익은 20만5천달러, 전국적으로는 35만달러다. 그나마 타이베이에서만 400만 달러를 벌어들인 블록버스터의 성공 덕택에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만의 평균 영화제작 비용이 꽤 낮다고는 해도 두세편을 제외하면 이익을 낸 영화는 거의 전무한 형편이다.
36편의 영화 대부분이 정부나 대만영상위원회에서 최근 늘어난 보조금을 받아 만들어졌다. 믿을 만한 국내외 관객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 관료들이 대만 감독들의 유일한 대상 관객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에서, 많은 영화들이 아무 갈등이나 드라마 없이,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사람만을 담고 있는 것이 설명된다.
이들 영화는 보조금을 못 받는다 해도 이렇게 저렇게 정부에서 금전적 도움을 받는다. 후반작업 보조금, 마케팅 보조금, 극장 상영 보조금, 영화제 참여 보조금이 그것이다. 어떤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 중앙정부와 지방관청에서 추가로 금전적인 보상을 받는다.
이런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영화의 타이베이 박스오피스 수익이 2만달러에 이르러야 한다. 따라서 보통 영화의 프로듀서가 그 영화가 개봉하는 주에 극장에서 개인적으로 표를 사들인다. 박스오피스 수익을 반반으로 나눈다 치면, 이렇게 해서 박스오피스 수익이 2만달러를 넘으면 1만달러를 투자해서 다양한 보조금을 받아 10만달러 정도를 거둬들일 수 있다.
10년 전에는 프로듀서들이 돈이 든 빨간 봉투로 극장주를 매수해 그들의 영화를 계속 상영하게 했다면, 2011년에는 프로듀서들과 합작해 정부가 극장들을 매수하고 있다. 프로듀서들은 정부 정책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수법을 100가지도 더 알고 있으며, 정부관료들의 승인을 얻기 위한 기법도 터득하고 있다. 대만이 1980년대 후반 불완전한 민주주의 시기로 접어든 이후에도 독재의 흔적은 영화 관련 조직에 여전히 남아 있다. 영화는 비밀스러운 정부 정보 부처에서 관리된다. 현재 새롭게 문화부가 조직 중이기는 하지만 그나마도 지금까지 그래왔듯 정부관리들로 채워지리라 여겨진다.
지난 10년간 중국 영화산업은, 박스오피스에서 1억달러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세계 수준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지난 50년간 대만은 중국에 맞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세워왔다. 중국 영화산업이 국제화에 한참 박차를 가하고 있는 지금, 대만영화산업은 점차 자신만의 닫힌 제국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