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것이 필요했다. 절제하는 마음 같은 것은 고이 접어 책상 맨 아래 서랍에 넣어두고, 마냥 혈당수치를 높이고 싶은 마음. 요 몇달간 책과 뉴스를 보며 인류의 미래를 너무 고민했더니(내 미래가 더 큰일이다!) 머릿속에 ‘달달한 것’ 빼고는 아무 단어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달달한 연애담’이란 무엇인가. 사랑 이야기도 계절을 탄다. 예컨대 한스 에리히 노삭의 <늦어도 11월에는>은 비극적인 멜로드라마다. 치가 떨릴 정도로 아름답다! 비극이 사람 마음을 홀린다는 말을 알 수 있다. 낙엽지는 가을에(제목에 명기된 시기쯤 읽으면 된다) 어울리고, 사운드트랙으로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같은 곡이라도 들었다가는, 슬픔에 취해 다음날 숙취를 느끼기 십상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혹은 누구 하나가 죽는 사랑에 대한 처연한 아름다움을 그리는 소설은 주로 명작으로 꼽히지만, 그와 반대로 주인공들이 알콩달콩 시시덕거리기 좋아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는 동화와 같은 범주에 묶여 종종 ‘길티 플레저’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달달한 연애담’은 당연히 후자의 소설을 일컫는다. 앞뒤 안 가리고 “저 남자가 내 남자라고!” 소리치는 책 말이다.
아리카와 히로는 달달함에 대해서라면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작가. 일본에서 100만부가 넘게 팔린 라이트 노벨 <도서관 전쟁>을 비롯해 엔터테인먼트 소설로 유명하다. 아리카와 히로의 진가는 연애소설에서 발견되는데, 책 전문 잡지 <다빈치>가 2008년 뽑은 ‘올해의 연애소설’ 1위에 <별책 도서관 전쟁1>이 꼽힌 바 있고, 한국에서 최근 출간된 <고래남친>도 그에 뒤지지 않는 당도를 자랑한다. <도서관 전쟁>은 미디어의 검열을 강화하는 법률이 시행되는 세상이 배경이다. 여자주인공인 이쿠는 도서관을 지키는 도서특수부대 소속. 검열에 반대하기 위해 무력으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로맨스가 웬말이냐. 게다가 남자주인공인 도조는 이쿠의 교관인데 키가 이쿠보다 작다. 연애소설의 배경으로 부적절한 곳에서 연애소설의 남주 스펙에 맞지 않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키다리 아저씨> 같은 두근거림을 풍기며 <도서관 전쟁>이 끝나더니, <별책 도서관 전쟁1>에서 본격 연애담이 이어진다. <고래남친>은 단편집인데, 연애와 관련한 여섯 가지 경우의 수를 뼈가 녹아내릴 정도로 사랑스럽게 보여준다. 표제작 <고래남친>은 연락을 자주 할 수 없는 직종(잠수함 승조원)에 종사하는 남자친구와 연애하는 경우, <롤아웃>은 일 때문에 엮인 ‘범생’ 타입의 남자에게 미운정 들더니 고운정도 드는 경우, <국방연애>는 친구와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느라 속터지는 남자의 경우, <여친은 유능해>는 나이가 어리지만 똑떨어지는 여자와 머뭇거리다 청혼할 타이밍을 놓쳐 갈등하는 남자의 경우…. 다들 너무 귀여워서 책 읽다 말고 절로 ‘여친 미소’를 짓게 된다. 마음의 혈당치가 낮아진 사람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