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좋다' 일곱번째-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4월17일까지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 출연 정성화, 최재웅, 김승대, 박은태 / 02-764-8760
빨간 립스틱에 마스카라까지 바른 남자, 그 옆에 심각한 표정을 짓는 한 남자. 둘의 틈새 사이로 쓰인 ‘치명적인 사랑’이란 문구. 포스터만 보면 <거미여인의 키스>는 동성애를 다룬 연극이다? 무대는 군부독재하인 197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감방. 어린 남자와 사랑한 죄로 잡힌 몰리나, 사회주의 혁명을 부르짖다 갇힌 혁명가 발렌틴. 두 남자가 같은 감방에 수감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작품은 라틴아메리카문학의 문제작으로 꼽히는 마누엘 푸익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같은 제목의 영화와 뮤지컬로도 제작돼 아카데미상과 토니상을 수상했다.
원작이 감방에 갇힌 두 사람 삶을 통해 독재의 힘이랄까, 전혀 이질적인 두 사람 모두를 파멸시키는 과정에 초점을 두었다면 연극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애에 더 중점을 둔다. 즉 시대적 상황보다 인물들의 내적 변화에 집중한다. 이 관계를 관통하는 것은 몰리나가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다. 영화는 사랑하는 남자와 키스하면 표범으로 변하는 여자 이야기인 <캣 피플>. 극 초반, 몰리나의 영화 이야기 중에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이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시작부터 ‘여자 몰리나의 마음’을 표현하며 연극의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한다. 둘 사이에 감돌던 반목과 긴장은 몰리나의 영화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조금씩 허물어진다. 마침내 두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연극에서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몰리나의 캐릭터 재창조에 있다. 연극 속 몰리나는 원작보다 더 위트있다. 또 마음 한구석에 늘 거부당하며 변화를 강요받은 자의 상처도 품고 있다. 게이라는 사회적 소수자의 내면에 안착해 생산된 캐릭터다. 정감 가는 몰리나의 캐릭터는 발렌틴의 감정변화가 명확하지 않음에도 그가 몰리나를 받아들인 이유를 짐작게 한다.
쇠창살 대신 원통을 겹겹이 쌓아올린 무대, 인물들의 심리상태에 따라 변화는 조명, 라이브 피아노 반주. 감옥이란 갇힌 공간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신선하게 바꾼 시도도 좋다. 다만 이 정도의 배우들이라면 좀더 무겁게 극을 끌고 가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갈증은 남는다. 오랫동안 지켜온 신념과 성향을 버리고 발렌틴은 과연 몰리나를 사랑했을까? 영화 이야기 표범 여인의 키스가 곧 거미 여인의 키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심은하
뮤지컬 <광화문연가> 4월10일까지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 출연 윤도현, 송창의, 김무열, 리사, 박정환, 구원영, 양요섭 등 / 02-518-0575
우리도 괜찮은 창작 주크박스 뮤지컬이 생길 때가 됐다. 그 소망을 뮤지컬 <광화문연가>가 해냈다. <소녀> <옛사랑> <사랑이 지나가면>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 고 이영훈 작곡가의 히트곡 30여곡이 사랑 이야기에 담겨 공연 내내 울려퍼졌다. 막이 오르면 현재의 상훈은 이야기 콘서트를 구상하는 가수 지용과 함께 과거를 더듬어간다. 이 둘이 극의 안내자 역할을 한다. 현재의 상훈과 지용이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는 학생시위로 들끓던 1980년대. 작곡가 상훈은 여주를 놓고 운동권 후배 현우와 삼각관계에 빠진다. 그러나 여주와 현우의 사랑을 확인한 상훈은 기꺼이 여주를 보내준다. 그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는 상훈의 노래로 재탄생한다. 무대 양쪽에 자리잡은 하얀 그랜드 피아노, 눈내리는 광화문 풍경, 악보를 소재로 만든 영상 배경, 비치는 막을 사이에 둔 무대는 고 이영훈의 서정적인 멜로디를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살려낸다.
하지만 “명곡의 힘으로 시대와 세계를 뛰어넘고 싶다”는 포부는 잠시 미뤄둬야겠다. 작곡가 이영훈의 노래는 가수 이문세의 히트곡 모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이 점이 이문세의 목소리에 중독된 386세대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듯싶다. 노래 하면 빠지지 않는 주연급 배우들이 불렀음에도 뮤지컬 넘버는 귀에 감기지 않는다. 그룹 비스트 양요섭의 출연으로 중·고생 팬들도 제법 찾은 무대는 세대 차에 어리둥절해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영훈의 감미로운 노래가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청춘의 이야기와 밀착력이 떨어졌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란 규모 또한 무대를 분산시킨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이야기가 있는 콘서트에 가깝다. 작곡가 이영훈의 팬이라면, 출연 배우들의 팬이라면 망설일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