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사고는 끔찍한 영상으로 떠오르지만(그때 난 10대였다) 옆 나라 일본의 사태는 시시각각 오감을 옥죈다. 최초 폭발 이후 단 한 차례도 상황이 나아졌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으니 더 그렇다. 인류는 원전을 만들고 이용할 줄만 알지 원전을 없애고 (주변 생태를) 되돌릴 줄은 모른다. 원전을 ‘안전하게’ 폐기한 기술도 경험도 갖고 있지 못하다. 이 핵이라는 놈은 자칫하면 한순간에 괴물로 돌변한다. 통제불능, 예측불허다.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다. 리비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군의 폭격기가,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는 예멘 군부의 탱크와 총포가 오히려 ‘인간적으로’보일 정도다.
모든 ‘희박한 확률’이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 격납용기는 무너졌고 핵연료가 녹고 있으며 핵분열의 증거도 나타났다. 주변 토양 오염은 체르노빌 수준이라고 한다. 30km 밖에서도 누적 피폭 추정치가 유아 기준치를 넘어섰단다. 가까스로 내부 온도는 낮췄지만 이번에는 압력이 문제라서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 방사성 물질이 가득한 증기를 대기 중으로 빼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경북 영덕·울진에 이어 지난달 원전 유치 신청을 한 강원 삼척에서는 유치 찬성 플래카드가 곳곳에 나부끼고 있다. 국책사업으로 돈이 돌게 하겠다는 지역 당국과 업자들의 이해 관계야 말할 것도 없지만 보상을 받아 동네를 뜨거나 자식들에게 한푼이라도 더 남겨주려는 주민들의 바람도 뒤엉켜있다. 가장 힘없고 돈없는 곳을 공략하는 원전의 미래를 우리는 지금 일본에서 보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사고 수습 중인 ‘협력업체’ 직원들이 피폭됐다는 소식이 속보로 뜬다. 이들의 상당수는 도쿄전력 하청업체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수도권의 수돗물도 방사성 물질에 오염됐다는 경고가 나왔지만 도시 빈민들은 장기적으로 생수를 사먹을 수가 없다. 이재민이 아니라고 해도 가장 먼저 생업을 위협받은 이들은 동북부의 농민, 어민들이다.
션 버니 전 그린피스 반핵국장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미래가 없는 기술에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미래의 재앙’을 담보로 ‘오늘의 윤택’을 누리는 일도 고통스럽지만 ‘타 인의 재앙’을 담보로 ‘나의 윤택’을 누리는 일도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우리, 최소한 원전 수출로 돈 벌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