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미국의 유료 케이블 채널 <HBO>에서 첫 방송된 일인극 <서굿>(Thurgood)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연기파 배우 로렌스 피시번이 출연하는 이 작품은 지난 2008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던 연극으로, 최근 워싱턴DC 케네디센터 내 아이젠하워 시어터에서의 한정 앙코르 공연 실황을 녹화 방영한 것이다. 주인공 서굿 마셜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법관으로, 1967년부터 91년까지 재직했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사실이지만 그는 1954년 ‘브라운대 교육위원회’ 소송으로 대법원까지 항소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 공립학교에서 널리 행해지던 인종차별 정책을 위헌으로 판결 받아내 흑인인권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굿>의 배경은 하워드 대학의 강단이다. 무대에 첫 등장하는 주인공은 나이 든 서굿이다. 그는 대법관을 사임하고 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시청자는 그의 강의를 경청하는 법대생이 된다. 로렌스 피시번이 연기하는 서굿은 우리를 향해 자신의 출생부터 가족사와 교육과 커리어, 법대 시절, 미국 흑인인권단체인 NAACP에서 리드 변호사로 근무하던 시절, 대법관 후보로 올라가서 은퇴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굿은 부모의 과거를 회상한다. 기차역 짐꾼으로 일했지만 헌법에 관심이 많아 법정을 자주 찾아갔던 아버지는 늘 서굿과 토론을 벌였다. 교사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교실 바닥청소까지 해야 했던 어머니는 서굿을 대학교육까지 시키겠다는 신념으로 결혼반지까지 전당포에 맡긴다. NAACP가 의뢰를 맡은 법정공방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진주 귀걸이를 판 서굿의 첫 번째 아내 버스터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서굿>은 흑인을 대상으로 한 집단린치가 성행하던 남부지역에서까지 흑인들의 변론을 담당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유년 시절부터 은퇴까지 챕터처럼 나누어 소개한다.
일인극인 관계로 넓은 무대에는 피시번 홀로 등장한다. 세트로는 커다란 강단 겸 책상과 몇개의 의자가 전부다. 하지만 피시번이 열연하는 서굿은 무대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원래 이야기꾼으로 알려진 서굿은 단 한순간도 심오한 작품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지 않는다. 한편 미국 공영방송인 <PBS>를 비롯해 <HBO>와 <쇼타임> <스타즈> 등 유료 케이블 채널은 종종 직접 브로드웨이나 런던 시어터 디스트릭 등을 방문하기 힘든 시청자를 위해 인기 무대극을 텔레플레이 포맷으로 TV 방영한다. 이중 하나로 소개된 <서굿>은 <HBO>에서 3월 내내 방영되며, 곧 DVD로도 출시될 계획이다.
투쟁하는 삶,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서굿>의 배우 로렌스 피시번 다음은 공영방송 <NPR> 라디오 인터뷰 프로그램 <더 트리트먼트>의 영화평론가이자 프로그램 진행자인 엘비스 미첼이 <HBO> 스페셜 <서굿>에 출연한 로렌스 피시번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다.
-<서굿>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희곡을 읽은 뒤 작품을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2006년에 처음 읽었는데, 그전까지는 서굿 마셜이 첫 흑인 대법관이었다는 정도만 알았다. 희곡을 읽으면서 그가 흑인인권운동에 중요한 획을 그은 변호사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6년이면 수많은 제의가 있었을 텐데 왜 어려운 일인극을 택했나.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출연을 결정하던 시기에는 ‘나 혼자서 무대 위에서 어떡하나’ 이런 걱정은 안 했다. 승낙을 한 뒤에야 생각하게 됐다. (웃음)
-일인극은 캐릭터나 흐름 등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 =물론 첫 리허설과 프리뷰 공연 사이에 “너무 무리한 것 같아. 어떻게 한다고 했는지… 정말 못하겠다”라고 걱정한 적은 있다. 한 10초 정도?
-‘투쟁하는 삶’을 모토로 하는 캐릭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에게 배운 것 같다. 남부 출신인 어머니는 인권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흑인 대학에서 공부하셨다. 인종차별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나도 그 시대에 성장했기 때문에 늘 그런 이슈에 신경을 쓰게 된다.
-현재 <CSI>에 출연 중인데 흑인 배우가 주인공인 TV시리즈가 별로 없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CSI> 출연을 결정한 뒤에야 그런 질문을 받게 됐다. 당시에는 드라마 <유닛>의 주인공도 흑인이었고, 지금은 <크리미널 마인드: 서스펙트 비헤비어>의 포레스트 휘태커도 있다. 이게 버락 오바마의 영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거기에 별 문제는 없다. 오히려 더 잘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