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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퍼스] 차도남 이미지는 No 괴짜 캐릭터는 Yes
이화정 2011-03-21

아카데미가 선택한 남자, <킹스 스피치>의 콜린 퍼스

여자들을 위한 맞춤형 남자. 미스터 다아시의 신화는 없다. <킹스 스피치>의 ‘조지 6세’는 왕이 될 만한 자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겁 많고 소심하며 말더듬이 증상까지 있는 나약한 한 인간. 왕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연기하면서 콜린 퍼스는 이제껏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연기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다.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올 오스카 남우주연상은 아카데미 점치기의 주요 안건이 아니었다. <킹스 스피치>에서 말더듬이 왕 ‘조지 6세’를 연기한 콜린 퍼스는 응당 수상자로 분류됐다. 지난해 <싱글맨>의 ‘동성애자 교수 해리’가 수상 문턱에서 제프 브리지스(<크레이지 하트>)에게 자리를 내줬던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영국 왕 조지 6세라는 역할의 영향이 컸다. 2차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영국 국민을 독려했던 강단있는 지도자는, 영국 국민에겐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로 여전히 현재하는 그들의 역사였다. “이제 우린 배우가 되었다!”란 조지 5세의 영화 속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후손 윌리엄 왕자의 결혼이 ‘세기의 결혼’으로 소비되는 현실. 조지 6세는 라디오의 등장으로 인해 로열패밀리와 쇼비즈니스계의 공생관계가 시작되는 첫 아이콘이었다.

<싱글맨> 이후 달라지다

표면적으로 <킹스 스피치>는 장애를 극복한 한 인간의 휴먼스토리가 틀림없다. 그러나 영화가 영국 박스오피스의 기록을 교체하며 승승장구하는 더 근본적인 심리를 파고들자면 결국 로열패밀리를 훔쳐보는 쾌감이 되는 것이다. 말더듬증이 아니라, 그게 ‘조지 6세’의 말더듬증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톰 후퍼 감독이 애초, ‘왕가의 얼굴’로 물색한 인물은 <다빈치 코드>의 악마 같은 속성부터, <윔블던>의 로맨틱한 모습까지 종횡무진 질주하는 사내 폴 베타니였다. 그러나 자신을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를 보고도 베타니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유로 출연을 고사하고, 뒤늦게 그 결정을 후회하는 동안 발빠르게 발음교정에 들어간 건 콜린 퍼스였다. 제인 오스틴 소설 속 남자의 완벽한 현현으로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었던 그 콜린 퍼스 말이다.

사실 그가 <싱글맨>에서 동성애자로서의 비애를 드러냈을 때조차 여성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매력의 크기가 감소하진 않았다. 그가 어떤 변신을 하든 관객은 대중적인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훈남 퍼스를 기억해냈다.“로맨틱 코믹물을 그렇게 했지만 정작 난 드라마가 더 편하다. 몇몇 영화는 즐거웠지만 꼭 하지 않아도 될 작품들도 많았다.” <싱글맨>을 기점으로 퍼스는 자신이 영역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음을 확실히 주지시켜주고자 했다. <킹스 스피치>는 같은 맥락에서 그가 자신의 커리어를 넓혀가는 과정의 한 예로 기록될 수 있다.

<킹스스피치>

무뚝뚝한 영국 신사는 사라지고

보통의 연기가 완벽한 표현을 위한 쌓아올리기의 과정이라면 조지 6세는 정확히 그 반대의 과정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비디오테이프를 뒤로 감듯, 말을 조합하는 것이 아닌 말을 해체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마크 다아시가 구사하던 또박또박 정확한 영국식 표준어는 버벅거리는 데다가 다음 단어를 찾지 못해 식은땀을 흘리게 만드는 어눌한 조지 6세의 표현으로 대체됐다. 무표정한 얼굴 속, 영국 남자의 무뚝뚝한 위엄을 드러냈던 퍼스는 오간 데 없었다. 시원하게 욕설을 퍼부을 상황에서도 ‘f’를 발음하지 못해 얼굴이 시뻘게져서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마는 가장 초라한 모습의 남자가 재현됐다. 어눌한 연설에 황당해하는 대중의 표정은 공포에 질린 조지 6세를 연기하는 퍼스의 표정을 한껏 강조해줬다. <맘마미아!>에서 동성애자임을 밝히며 우스꽝스러운 춤과 노래로 화답하던 ‘해리’가 준 민망함과 비교해봐도, 이쪽이 단연 더 초라한 형국이다.

“생전 조지 6세의 연설 테이프를 참고했지만 그것만 해도 이미 어느 정도 유창해진 이후의 기록이었다. 결국 그가 그 정도로 훈련되기 전, 말을 더듬던 시절을 유추해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왕가의 인물이라는 특성상, 직접 그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역할이 운전사였다면 직접 운전하는 사람을 찾아나서지 않았겠나. 그런데 이 역할은 그런 접근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결국 ‘장애’라는 부분에 초점을 둔 접근이 이루어졌다. ‘영국 말더듬이 협회’를 통해 언어장애의 근본적인 원인부터 분석해나갔다. 가장 큰 도움을 준 이는 다름 아닌 이 영화의 각본을 쓴 데이비드 세이들러였다. 어릴 적 말을 더듬었던 세이들러의 경험담은 퍼스에게 하나하나 소중한 자료였다. 덕분에 퍼스는 언어장애를 겪는 이들의 기술적 문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그들이 해결해나가야 할 내면의 고민까지 함께 토론할 수 있었다.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카메라가 꺼져도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돼버렸다. 말을 더듬는 데 너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다 보니 처음엔 유창하게 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감독이 완곡하게 말렸고, 급기야 말더듬증 증상이 마치 내 원래 모습처럼 돼버린 거다.” 퍼스 스스로는 물론 이런 기술적인 연마가 연기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열심히 했다고 해서 관객이 그 자체에만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열과 성을 다해 연기한 퍼스를 향해, 아카데미가 화답했다는 사실이다. “춤이라도 추고 싶다”는 그의 수상의 기쁨은 잠시, 생소한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퍼스의 다음 작품은 존 르 카레의 소설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원작으로 한 토마스 알프레드손의 작품이다. 은퇴한 영국 스파이가 자신이 일하던 정보국의 스파이를 색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시작되는 스릴러. 퍼스는 게리 올드먼, 톰 하디, 마크 스트롱 등과 함께 출연, 정보국 요원으로 분한다. “난 이상한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내 안에 뭔가 괴짜 기질을 숨기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렇게 복잡한 계산 따위는 없다. 그냥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는 건 재미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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