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이 출판사별로 새로이 간행된 덕분에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좋은 책을 다시 읽게 되곤 한다. 이번주에는 그렇게 읽은 책이 <아Q정전>이었다. <아Q정전>은 알려진 바대로 아Q와 그가 살아가는 사회(신해혁명 전후의 중국)를 그린 소설인데, 다시 읽고 보니 예전에는 단순한 기인 열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즈음 어딘가에 <폭풍의 언덕>과 <백치> <키다리 아저씨> <올훼스의 창>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죄와 벌>과 함께 범벅이 되어 있던 <아Q정전>은 어딘가 ‘어둠의 광시곡’ 같은 분위기의 사운드트랙을 등에 업고 펄 벅 여사의 대륙풍 서사와 비슷하지만 좀더 궁상맞은 분위기의 무엇이었는데, 다시 읽고 보니 완전히 다른 소설이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아Q라는 이가 주인공인데 사실 아Q의 정확한 이름이 무엇인지는 ‘정전’(正傳)을 기록하겠다고 나선 이도 알지 못한다. 성이 무엇인지는 아예 짐작조차 할 수 없고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도 미지수다. 가족도 없고 출신지도 파악이 불가하니 아Q라는 자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유일한 맥락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살고 있는 사회다. 하지만 그는 날품팔이로 살며 하루하루 빌어먹듯 벌어먹고 사는지라 세상이 그를 호의적으로 대우해주지는 않는다. 한때는 잘살고 일도 잘하고 아는 것도 많았다는데, 식견이 있는 사람으로서 말을 가릴 줄도 알았다는데, 동네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괴롭힘(말과 행동으로 괴롭히다 마침내 막무가내의 폭력으로 이어지는)을 일방적으로 참다 보니 그만의 정신적인 승리법이 마치 잡초처럼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웠다.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을 바보취급하고 스스로를 우월한 자로 높여 생각하는 습관이 바로 그것인데,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마련한 방책은 그의 정신 어딘가에 복구 불가능한 구멍을 뚫었는지 머릿속의 생각을 입밖에 내어 말하는 습벽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당하고 또 당하고. 그렇다고 그가 불쌍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옷을 벗고 이를 잡는 왕 털보를 보고 그 옆에 앉아 이를 잡기 시작한 아Q는 자기의 이가 왕 털보의 그것보다 적다는 사실에 분개해 날뛴다. 비구니의 볼을 만지고 그 보드라움에 혹해 여자라는 이단을 가까이하고자 동네 여자 하인에게 “나랑 자자, 나랑 자!” 하고 덤벼들었다 몽둥이 타작을 당한다. 짧은 소설이지만 곳곳이 다양하게 읽힐 여지가 있는 이야기인데, 한 지역사회의 약한 고리가 악한 고리가 되고 결국 떨어져나가기까지의 일대기라고도 할 수 있고, 신해혁명 당시 중국사회를 풍자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의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지만 결국 전쟁에서는 내내 패배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Q를 보고 있자면, 자잘한 소비욕구를 충족시키며 전반적인 소득감소를 감내하고 자위하는 현대인하고도 별반 멀어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