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요즘 SF 작가들은 스페이스 오페라를 두려워하는 걸까? 조지 루카스가 이 장르를 서부극처럼 만들어버린 게 마뜩잖아서? 프랭크 허버트의 <듄>을 능가하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창조할 능력이 없어서? 그런데 만약 SF의 하위장르인 스페이스 오페라를 ‘하드SF’(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을 과학적으로 그럴듯하게 풀어내는 장르)와 아름답고 견고하게 결합한다면? 세상에 그런 연금술이 어딨냐고 묻는다면, 버너 빈지의 <심연 위의 불길1>을 내밀리라.
<심연 위의 불길1>은 지구가 존재했다는 기억조차 거의 사라져버린 먼 미래가 배경이다. 은하계로 진출해 다른 외계 문명과 정쟁을 벌이던 인류는 적색왜성의 주변을 떠도는 행성에서 고대의 종족이 남긴 유적을 발견한다. 그런데 발굴 과정에서 몇 십억년 동안 지하에 묻혀 있던 사악한 정신 ‘신선’이 각성한다. 이 초월적인 정신적 존재는 인근 행성을 모조리 파괴하고, 겨우 탈출한 인류 탐험대의 우주선 한척이 2만광년 떨어진 원시 행성에 불시착해 SOS를 보낸다.
버너 빈지는 가히 기념비적인 우주를 창조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보과학을 기반으로 한 우주관이다. 미래의 우주는 좀더 본격적인 정보 공유사회로 진화했고, 각각의 은하는 물리적 특성에 따라 몇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이를테면, 우주의 변방으로 갈수록 물리적인 특징이 달라져 정보는 엄청난 속도로 전파되고 초광속 여행도 가능하다. 이토록 기막히게 창조된 우주와 하드 SF 특유의 꼼꼼한 설정 안에서 버너 빈지는 정통 스페이스 오페라, 아니, 거의 무협지에 가까운 활극을 타오르는 필체로 불태워낸다. SF작가 데이비드 브린은 “황금시대(50년대 SF 소설의 황금기-편집자)의 스페이스 오페라를 능가하는, 엄청난 에너지로 불타오르는 현란한 작품”이라고 상찬했다. 근데 책 제목에 왜 숫자 1이 붙어 있냐고? 버너 빈지는 지금 속편을 집필 중이란다. 개인적으로는, 제임스 카메론의 차기작을 기다리듯 속이 바싹바싹 말라서 타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