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2일 일본에서는 다큐멘터리 한편이 개봉되었다. 이시오카 마사토 감독의 <요요추: 섹스와 다다시 요요기의 세계>가 바로 그것. 일본 AV의 아버지라 불리는 다다시 요요기(통칭 ‘요요추’)의 삶과 작품세계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올해로 74살인 요요추는 아직도 매달 한편씩의 작품을 만들고 있는 노장감독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일본사회가 AV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리고 요요추의 후기 작품의 경향이다.
요요추의 이력은 60년대 초부터 시작된 핑크영화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3년 핑크영화 제작사인 월드에이가에 들어간 그는 월드에이가의 세일즈 담당인 세이지 후지무라가 닛카쓰의 하청제작을 맡기 위해 세운 프리마 기획에서 연출 활동을 시작하였다. 자그마한 규모의 회사에서 요요추는 연출뿐 아니라 제작, 라인 프로듀서 역할까지 해야 했다. 그런데 1972년 그가 라인 프로듀서로 참여한 <여고생 게이샤>가 음란물 혐의로 피소되면서 6년간에 걸친 기나긴 재판에 들어간다. ‘닛카쓰 로망포르노 재판’이라 불리는 이 재판은 이마무라 쇼헤이, 오시마 나기사 등이 피고쪽 증인으로 나서 <여고생 게이샤> 제작팀을 옹호하는 등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재판 끝에 닛카쓰와 프리마 기획이 승소했지만 프리마 기획은 파산하고 만다.
하지만 곧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80년대 초 비디오 시대가 열리면서 AV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요요추는 1981년에 아테나 에이조를 설립하여 AV계의 전설적인 여배우 교코 아이조메와 <음욕의 아픔>을 시작으로 히트작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AV가 당시 소니의 베타와 파나소닉의 VHS간의 비디오 표준경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 즉 두 회사에서 막 출시한 비디오 플레이어의 판촉경쟁 중에 파나소닉이 교코 아이조메를 포함한 인기 AV 비디오를 사은품으로 제공하였고, 이 때문에 소니의 베타가 결정적으로 밀렸다는 것이 일본 홈비디오협회의 의견이다.
이후 요요추는 AV계의 간판이 되었다. AV 대여점에서 요요추라는 이름은 그 어느 AV 여배우의 이름보다 인기가 있었다. <오나니에> 시리즈, <최면섹스> 시리즈, <오디션> 시리즈 등 그의 성공은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90년대 사이판에 스튜디오를 짓다가 버블경제 붕괴의 직격탄을 맞고 파산지경에 이르고 만다. 이후 그는 1인 제작시스템을 도입하여 재기에 다시 성공한다.
핑크영화와 AV와 일본사회는 가끔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다. ‘닛카쓰 로망포르노 재판’ 사례도 있지만, 1989년 어린이연쇄살인범 사건 역시 커다란 이슈였다. 살인범이 폭력/섹스 비디오와 만화 수집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표현의 제약 문제가 다시 거론되었고, 이에 관련된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 그리고 요요추 역시 뒤에 숨지 않고 적극적으로 논쟁에 가담했다. 이를테면 AV에서 흔히 보이는 강간장면에 대해 남성의 마초적 시각과 여배우의 인권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임이 1994년에 만들어졌는데, 요요추는 약 2년간에 걸쳐 이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 요요추의 작품은 일본의 성문화를 탐구하는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다큐멘터리의 후반부에 이르면 요요추의 최근 작품세계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진다. 초기 그의 작품의 주제가 ‘오르가슴에 대한 사실적 탐색’이었다면 최근에는 ‘행복과 치유’를 위한 섹스의 역할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작고한 작가 가즈유키 가사하라가 소개해준 다중인격장애를 겪는 여성이 카메라 앞에서 섹스를 한 뒤 치유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인 이시오카 마사토는 요요추의 조감독 출신이다. 그는 요요추와의 작업을 통해 인간심리의 밑바닥까지 파고드는 것이 바로 요요추 작품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작품을 만든 계기라고 말하고 있다. 요요추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핑크영화와 AV의 또 다른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