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퀴어영화제 사무국 일을 잠시 도운 적이 있다. 영화 <벨벳 골드마인>이 막 개봉했을 때였고 트렌드에 민감한 (여자)친구들이 <섹스 앤 더 시티>에 몰입하던 때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 만난 사람들은 내 인생에 꽤 중요한 영향을 줬다. 지금도 그 시간을 고맙게 여기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거나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때 내가 배운 건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계속해야겠다는 교훈이었다. <게이 컬처 홀릭>도 그렇다.
이 책은 한국형 게이 리포트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까지 등장하는 최신 버전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자들이 게이 문화에 대해 ‘경험적’으로 쓰고 있다. 대중문화 속 퀴어 코드를 살핀 칼럼과 에세이, 리포트, 설문조사 등이 균형을 잡고 있다. 특히 ‘이성애자 상담실: 자경궁 박씨 언니에게 물어보세요’가 재밌는데, 게이에 대한 편견 혹은 공포 혹은 무지에서 비롯된 얼토당토않은 질문들에 ‘꼴리는 대로’ 대답한다. 요컨대 “게이는 어째서 패션 감각이 뛰어날까요?” “게이는 모두 꽃미남인가요?” “게이는 남자라면 다 좋은가요?” “게이는 결국 여자 같은 남자잖아요?” 같은 편견에서 나온 질문들에 따박따박 따져 묻는 답변이 난무한다. 그렇게 낄낄거리던 중에 아차, 싶다.
책의 포인트는 바로 이 ‘아차’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폭력적인 질문을, 태도를, 시선을 보냈을지 모른다고 깨닫게 만든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건 내가 누군지 아는 것과 같다. 드라마나 영화, 뉴스만 보고 “게이는 다 그래”라고 말하는 것과 만난 지 얼마 안된 사람이 ‘너 같은 애들은 원래 그래’라고 하는 건 똑같은 폭력이다. 너는 누구냐고 묻기 전에 중요한 건 내가 누군지 먼저 말하는 것이다. 그 어려운 질문을 이성애자 대다수가 대충 생략하고 산다는 점에서, 게이(또 소수자)들이 훨씬 훌륭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