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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의 시네마나우] 그리워라 안타까워라

동남아시아의 사라져가는 영화관을 기록으로 남기는 비주얼 아카이브

필립 자블론이 블로그에서 소개한 미얀마 양곤의 티다 시네마 전경.

차이밍량은 사라져가는 단관 극장에 대한 아쉬움이 유난히 컸던 감독이다. 그래서 폐관을 앞둔 타이베이의 복화극장을 배경으로 <안녕, 용문객잔>(2003)을 만들었고, 칸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옴니버스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의 한 파트인 <이것은 꿈이다>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문을 닫은 말레이시아의 단관 영화관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단관 극장 시대의 소멸은 범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이유는 제각각이다. 일본은 예술영화 붐이 시들해지면서 미니 시어터 혹은 예술영화 전용관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지난 3년 사이에 시네 라 셉트, 시네마 시모기타자와, 시어터 쓰타야, 시네마 안젤리카, 에비수 가든 시네마, 시네 세존 등이 줄줄이 문을 닫았거나 닫을 예정이다. 아프가니스탄처럼 종교나 정치적인 이유로 극장이 사라진 예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제성 때문이다. 그래서 단관 극장들은 급속도로 멀티플렉스로 대체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단관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이 주는 ‘설렘’과 같은 정서가 사라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사라져가는 동남아시아의 영화관을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기는 저널리스트가 있다. 필립 자블론이 그로, 호주인인 그는 타이 치앙마이대학 사회과학과 지속가능 개발 지역센터에서 공부한 뒤 호주의 동남아시아 전문 저널 <ASEAS>에 글을 쓰고 있다. 그는 2006년 자신이 살고 있는 치앙마이의 단관 영화관이 문닫는 모습을 보고 아쉬움을 느낀 뒤, 사라져가는 단관 영화관을 사진과 글로 남기기로 하고 ‘동남아시아 영화관 프로젝트’(Southeast Asia Movie Theater Project)를 시작하였다. 타이의 짐 톰슨 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8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타이뿐만 아니라 메콩강 주변 국가를 돌면서 영화관을 찾아다니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가 수집한 자료와 사진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주소는 http://www.seatheater.blogspot.com/).

그의 글과 사진은 건축의 비주얼 아카이브이며 역사와 문화적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필립 자블론에 따르면 그가 기록하고 있는 영화관들은 도시화로 인해 점차 사라져가는 지역의 사회, 문화적 과거를 보존하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이다. 그는 주로 오래된 영화관을 찾아다니며 사진에 담고, 영화관과 관련된 사람들의 구술을 통해 영화관의 역사를 기록한다. 그는 지금까지 타이와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등지를 돌아다니며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기록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미얀마의 양곤에 있는 와지야 극장은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20년대에 지어진 영화관으로 지금은 빈국으로 전락하였지만, 당시 버마의 번영상을 간직하고 있는 상징적인 건물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35mm 단관 상영관이 거의 사라진 지금 DLP 프로젝터로 영화도 상영하고 해외의 축구 경기를 중계하기도 하는 조그마한 규모의 소산 시네마를 찾아가기도 한다. 베트남의 호찌민시에 있는 토안탕 극장은 베트남이 공산화되기 전에 지어진 극장 중에 아직도 남아 있는 마지막 영화관이다. 라오스에는 단 한개관만이 남아 있는데, 그나마 주로 정부행사용으로 쓰이고 있다. 필립 자블론은 자신이 찾아간 연대기 순으로 영화관을 소개하고 있지만 지금은 사라진 영화관만 따로 모아서 소개하는가 하면, 각 영화관의 입장권 사진도 올리는 꼼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각 영화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혹은 극장주들이 들려주는 영화관에 얽힌 뒷이야기들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필립 자블론의 작업이 가치있는 가장 큰 이유는 머지않아 이들 대부분의 단관 영화관이 사라질 것이고, 그 마지막 기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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