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기 전 옷정리를 하다 꼬깃하게 접힌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펼쳐보니 2004년 초반 내가 일했던 영화의 스탭 비상연락망이었다. 몇명은 가물가물해도 그들의 얼굴과 현장에서의 행동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6개월 만에 중도 포기하긴 했지만 처음 현장으로 갈 때의 ‘원대한 꿈’도 새삼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생각해보면 7년 전 영화현장의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당시 제작부 막내로서 받았던 전체 임금이 300만원이었으니 경제적인 측면에선 지금보다 나을 게 없었지만 활기라는 차원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결론을 질러 말하자면 그 차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존재 여부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와 비슷한 급(이라곤 해도 나이는 열몇살씩 어린) 초보 스탭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에겐 비교적 뚜렷한 미래상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동시녹음팀의 한 친구는 현장 들어온 지 2년 정도 됐으니까 5년쯤 더 하면 퍼스트급이 될 것이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녹음기사가 될 수 있다고 했고, 촬영팀 막내 친구는 4~5년 열심히 뛴 뒤 퍼스트가 돼서 입봉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미술팀 막내는 좀 갑갑해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활용성이 높은 분야니까”라며 이 길을 일단 가보겠다고 했다.
이번 특집기사에 실린 스탭들의 각종 피해 사례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온다. 물론 당시라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리는 없다. 어쩌면 영화노조가 존재하지 않았던 탓에 스탭들의 피해는 더 많고 컸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때는 막연하긴 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물론 스탭들이 바로 그 희망을 담보로 잡힌 채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했을 가능성도 높다. 그렇게 현재를 너덜너덜 유린당했을지언정 어쨌든 희망은 있었다. 자신이 영화 스탭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감독급이 돼서 하고 싶었던 작업을 해보고 말 거라는, 이 쓰레기 같은 관행을 뒤집어엎고 말겠다는 희망이.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특집기사 말미에 실린 대담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젊은 영화인들에게는 희망이 없는 듯 보인다. 영화로 먹고살고 싶지만 도무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미래에 대한 비관이 그들 마음에 배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거짓되고 막연할지라도 희망을 주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그들이 영화현장에 붙어 있을 명분이나 의미나 이유는 없다. 최고은씨의 죽음에서 촉발된 이 논의의 종결점도 바로 그 ‘희망’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영화인들이 패기와 의지와 열정을 갖고 미래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아마도 그것이 핵심일 것이다.
7년 전 함께 초보 스탭으로 일했던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제는 퍼스트급으로 성장했을까. 아니면 2007년 이후 험악해진 충무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꿈을 포기하고 말았을까. 그들이 당시의 희망을 실현했기를 간절하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