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늘로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를 떠납니다.” 1월25일 한독협 원승환 배급지원센터 소장이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독립영화 일을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1997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2000년 인디포럼 작가회의 프로그래머, 2002년 한독협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한독협 배급지원센터 소장까지, 지난 10년 동안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한 그였다. 누구보다도 한국 독립영화를 사랑한 그가 왜 갑자기 독립영화계를 떠나려고 하는 것일까.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 지난 10년간의 소회를 먼저 물었다. “처음에는 인터뷰를 안 하려고 했다. 그만두는 마당에 혼자 잘난 척하는 것도 아니고. 창피하다. 한독협 안에서 동료들과 함께 독립영화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독립영화계) 밖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독립영화를 지지하겠다.”
-갑작스러운 결정이다. =해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독립영화)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걸 알고 있다. 습관적으로 그런 말을 하다가 실행으로 옮기는 게 지금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여전히 ‘한독협에서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구나’라고 생각한다. 인디스페이스가 휴관을 한 뒤 한독협 배급지원센터 소장으로 1년 동안 홀로 지내면서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더라. 민간독립영화전용관 건립 문제 등 계획했던 일이 잘 안된 것도 하나의 이유다. 큰 좌절은 없었지만 스스로 지치게 되더라.‘한독협 밖에 나가서 독립영화계를 바라보면 좀 달라질까’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때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없는, 그래서 가장 가벼운 시점이 지금인데, 이때가 아니면 다시 그만둘 기회가 없을 것 같더라.
-그래서 결정한 다음 선택이 뭔가. =독립영화 일을 10년 동안 해서인지 영화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싶다. (그러니까 그 일이 뭔가.) 말을 하면 사람들이 실망할까봐 못하겠다. (웃음) 대단한 일도 아니고 조용히 살 거다.
-민간독립영화전용관 건립 문제, 독립영화 관련 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 중단 등 현재 독립영화계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다. =어려운 시기에 혼자 발을 빼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내가 없다고 해서 독립영화계가 잘 안될 거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웃음) 지난해 (한독협에) 남아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민간독립영화전용관 건립추진위원회 일 때문이다.
-1년이 지난 지금 민간독립영화전용관 문제는 아직 큰 진전이 없다. =실무자들의 역량이 사업을 가시화할 만큼 투입이 안되고 있는 것 같다. 독립영화인들은 큰 규모의 부동산 거래, 극장 설계 및 운영 등 큰돈이 오가는 사업을 해본 경험이 없다. 그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창피한 말이지만 올해 다시 (사업을) 추진하면 지난해 겪은 문제를 또 반복하게 된다. 인간적으로 이제 그런 게 좀 두렵다고나 할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봐야 별 도움이 안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던가.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낫다.
-최근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CJ CGV 무비꼴라쥬가 과연 독립영화를 위한 상영 환경인지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독립영화를 둘러싼 산업 환경은 매년 변화한다. 롯데시네마의 경우, 전국 총 486개관 중 예술영화전용관인 아르떼는 달랑 6개관뿐이다. CJ CGV의 경우, 전체 600개관이 넘는 상영관 중 예술영화전용관이 9개밖에 없다. 1% 조금 넘는 비율인데, 멀티플렉스는 독립·예술영화 시장에서 자신의 몫, 그러니까 배려를 다 하고 있다고 말한다. 상영환경은 더 열악하다. 극장 입장에서 상업영화보다 예술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이 더 충성도가 높을 텐데, 상업영화는 왜 400석이 넘는 상영관에서 틀고 무비꼴라쥬는 작은 스크린에서 봐야 하는가. 또 예술·독립영화는 왜 특정 시간에 가야 볼 수 있나. 어쩌면 가장 안 좋은 조건에서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내가 관객이라면 화가 날 것 같다. 좀더 다양한 영화에 공정한 기회를 주기 위한 정책 점검, 개입이 필요하다.
-독립영화와 함께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언제였나. =선배 세대처럼 가시적인 성과나 새로운 걸 만들어낸 건 없다. 스스로 뿌듯했던 순간은 2007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개관했을 때다. 개인적으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독립영화 상영배급운동을 하면서 공동체 상영을 지역에 안착시킨 것이다.
-독립영화 배급과 관련해 현재 독립영화계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면. =관객과 어떤 이슈로 교감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여전히 일반 관객은 ‘<워낭소리> 다음에 어떤 독립영화가 있을까’라고 궁금해한다.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장이 없어서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처럼 독립영화를 가이드해줄 수 있는 텍스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