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마치 나쁜 스릴러영화 같다.”(시릴 투쉬) 영화 같은 일이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 직전에 벌어졌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될 예정이었던 독일 감독 시릴 투쉬의 다큐멘터리 <호도르코프스키>의 최종 편집본이 2월3일 투쉬의 사무실에서 도난당한 것이다. 투쉬의 사무실에서 사라진 것은 편집본이 들어 있던 컴퓨터 4대. 수사를 맡은 독일 경찰은 “매우 전문적인 솜씨로 (사무실에) 침입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밝혔다.
이번 사건이 더 심상찮은 것은 <호도르코프스키>가 사라진 것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주 전, 역시 투쉬가 묵었던 발리의 호텔방에서 <호도르코프스키>의 편집본이 담긴 컴퓨터의 하드디스크가 도난당한 적이 있었다. 이번 두 번째 절도 사건으로 투쉬의 다큐멘터리는 ‘우연히’ 사라진 게 아니라 누군가가 ‘계획적’으로 노리고 훔친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호도르코프스키>는 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이 다큐멘터리는 러시아의 석유재벌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의 이야기를 다룬다. 호도르코프스키는 전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 맞설 강력한 반체제 인사로 꼽힌다. 그는 2003년 총선 전 러시아 야당의 정치자금을 후원했고, 바로 그해 사치와 탈세 등의 혐의로 8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됐다. 2012년 러시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호도르코프스키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등장은 메드베데프 정권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푸틴의 수하가 한 일이 아닌가 싶다.” 위협을 느끼며 현재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는 시릴 투쉬 감독은 촬영 도중에도 러시아쪽으로부터 습격을 당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모든 위협과 절도 사건에도 불구하고 <호도르코프스키>는 예정대로 2월14일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이미 투쉬가 편집본을 도난당하기 전, 복사본을 영화제쪽에 전달했기 때문이다(불행히도 영화제에 제출한 복사본은 최종 편집본은 아니라고). 투쉬의 다큐멘터리가 무사히 상영되려면 아무래도 베를린영화제 사무국의 보안을 강화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