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낸 영화관람료의 0.1%가량이 시나리오작가한테 간다고 보면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관람료를 8천원이라고 했을 때 8원 정도라는 말이다. 500만명이 든 흥행 영화라면 작가에게 4천만원이 가는 셈이니, 언뜻 도시 4인가구 평균임금은 된다고 보이지만 해마다 빵빵 터지는 시나리오를 한편씩 쓰고 ‘게다가’ 그 영화들이 다 만들어지고 ‘나아가’ 개봉까지 하고 ‘심지어’ 흥행까지 되는 행운을 누리는 작가는 내가 아는 한 없다. 감독이 그렇듯이. 또 이건 어디까지나 결과적으로 ‘대략’ 그렇다는 얘기일 뿐 이렇게 똑 떨어지는 셈법으로 계약을 하거나 대가를 받는 구조가 아니다. 스탭으로 가면 그 대가라는 게 아예 ‘대략 사후’ 견적조차 안 나온다. 충무로 스탭의 평균임금이 52만원이라는 발표가 있었는데, 그나마 안정적인 투자를 받아 제작에 들어간 영화의 스탭에게나 해당된다. 그 전후 단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운이 좋아야(맘 약한 실장님이나 맘 좋은 대표님 만나야) 교통비를 받는다.
비교적 고용이 안정된 직장인들은 (명목상으로는) 일한 만큼 받는다. 고용이 불안한 알바생들은 (역시 명목상으로는) 받는 만큼 일한다. 둘의 중간에는 수많은 형태의 노동이 존재한다. 특히 그것이 계량하기 힘든 노동이라면, 그리고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 노동이라면, 대가의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까.
노동에 대한 대가는 노동을 하고 얻는 이득만이 아니라 노동을 하지 않을 때(혹은 못할 때)에도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비도 포함돼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복잡한 심사를 거치지만 6개월 이상 일하면 최소 두세달은 먹고살 실업급여를 한시적이나마 받는다. 고용보험가입사업장에서 일하거나 개별가입한 일용노동자라면. 그 안전망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대가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지병에 굶주림까지 겹친 창작자 한명이 세상을 떠났다. 남는 밥과 김치를 이웃에 청할 정도로 그녀의 마지막은 힘겨웠다. 세끼 밥도 해결되지 않는 이 일을 접고 다른 일을 찾을 기력조차 없었을 것 같다. 예전에 한 연출부 막내에게 들은 얘기 한 토막. “네가 이 영화에 기여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딱히 뭐라고 할지 난감하지만, 나 없이는 이 영화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아름답고 아픈 말이었다. 수익에 따른 최소한의 보수 쿼터와 월급(최소한 일당), 고용보험(실업급여) 적용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