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증후군이라는 질환이 있다.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것 같은 시각적 환영 때문에 매일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기하고도 슬픈 질환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 토·일 저녁 9시50분. 무려 9주 동안 대한민국의 TV를 시청하는 모든 여성들이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본방으로, 재방으로 그것도 모자라 IPTV로까지 현빈이 나오는 장면을 마르고 닳도록 챙겨보게 된 걸까. 현빈만 왕자가 되면 그만인 것을, 급기야 제 옆에 있는 애꿎은 남자친구가 혹은 남편이 갑자기 ‘괴물’로 돌변했고 현빈 없는 현실은 곧 지옥이 됐다. ‘현빈앓이’로 일요증후군이라는 불치병마저 극복해버린 모든 여성들을 뒤로한 채, 야속하게도 현빈은 해병대 지원이라는 이별을 고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VVIP 팬들을 달래려는 사회지도층의 선심의 일환으로 현빈은 연이어 개봉할 영화 <만추>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남겼다.
그러니까 그의 부재가 예고된 지금은 현빈 인터뷰가 최선이다. 확실하다. 그래서 무리를 해서 현빈을 만났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 만남은 인쇄기를 멈추고, 현빈이 들어갈 페이지만을 남겨둔 채, 설 연휴 기간에 하는 비상 인터뷰임을 알려둔다. 물론, 기자생활 이래 이런 말도 안되는 경우는 처음이다.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 트레이닝복을 입지 않아도, 스튜디오로 들어선 현빈은 몸의 한 근육 한 근육, 피부 한올 한올을 세심하게 관리한 듯한 압도적인 포스를 풍겼다. <시크릿 가든>의 주원과 다큐멘터리 <아프리카의 눈물>의 내레이션이 오버랩되는 듯한 기시감, 그 ‘사람 여럿 잡을’ 편안한 목소리로 그가 말한다. <만추>의 쫓기는 남자 ‘훈’과 <시크릿 가든>의 ‘주원’사이, 그가 걸어온 무수한 선택과 갈등에 대해. 그런데 현빈씨, 현빈씨는 도대체 몇살 때부터 그렇게 말씀을 잘하셨나요?
-군대 가기 전, 현빈 각인시키기 프로젝트인가. <시크릿 가든>에 이어 <만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까지 두편의 영화가 잇따라 개봉한다. 짜맞춰도 이렇게 딱 맞아떨어질 수가 없다. =다들 일부러 그런 거 아닌가, 잘됐다 하신다. 그런데 <만추>는 개봉이 본의 아니게 밀려서 지금 개봉이 잡힌 거다. 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 보고 많은 분들이 빨리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가 잘했으니까, 돋보이니까 뭐 이런 기대가 아니었다. 작품이 어느 정도 지나 개봉을 못하면 내 연기도 시기가 지난 연기가 돼버린다. 갓 구운 빵이 맛있다고 하지 않나. (웃음) 그게 좋아 보일지, 안 좋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연기를 했을 때 느낌에 최대한 가깝게 전달하고 싶은 거다. 빨리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 그래서 절실했다.
난 <만추>의 훈이가 얼떨떨하고 신기해
-<만추> 촬영이 지난해 1월부터 3월이었으니 시기적으로 보자면 <시크릿 가든>보다 앞선 작품이다. 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작품이다. 배우로서도 도전한다는 의미가 큰 작품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원작이 있는 작품이자 해외 올 로케이션, 외국 배우(탕웨이)와의 협업이 주는 애로점들이 많았다. =돌아보니 꽤 오래전 기억이 돼버렸네. 처음 시나리오를 받은 게 일 때문에 일본에 있을 때였다. 일본에서 영화사 분과 ‘접선’해서 책(시나리오)을 받고 읽어봤는데 작품이 너무 재밌더라. 여백이 워낙 많은 작품이었다. 대사, 지문, 상황 등 바뀔 여지가 많았다. 한국 들어오자마자 김태용 감독님 만나고 서로 의견을 조율했다. 감독님은 이 영화를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나를 만나자마자 혹시 그런 작업을 좋아하냐고 묻더라. 내 생각과 잘 맞는다 싶었다. 탕웨이도 이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고 들었고 그런 분위기들이 잘 어우러졌다.
-‘훈’이 줄 수 있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판단했나. 훈은 ‘애나’(탕웨이)가 가진 사연, 과거의 아픔을 즉각적으로 알아주고 터뜨리게 해주는 보조적인 캐릭터다. 영화의 중심은 역시 가출옥한 여자에게로 갈 수밖에 없다. =가출옥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거다. 감독님이 나에게 그러더라. 이 여자에겐 ‘훈’이 굉장한 선물이라고. 말은 그렇게 하시는데 결국 나를 잘 설득하신 거지. (웃음) 농담이고, 사실 나는 비중이나 그런 것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훈’이라는 남자는 지금껏 내가 했던 그 어떤 캐릭터와도 닮지 않았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가슴속에 텅 빈 아픔도 있고, 그게 얼핏얼핏 쓸쓸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나는 안 그래!’ 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가졌다.
-여배우에게 묻어간다, 는 혐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일각의 핀잔에 대해 여배우한테 많은 걸 배운다고 했는데 여전히 그 생각엔 변함이 없나. =지금도 배운다. 설령 내가 중심이 되는 작품을 찍는다고 해서 주변 분들에게 배울 게 없는 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50%라면 내가 만나는 배우들은 늘 60~70%를 가진 배우들이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상대배우가 보완해주는 거다. 그러니 난 운이 좋았다. 나도 내 나름대로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보다 더한 상대배우를 만나니까. 작품의 성공이나 인기를 떠나서 그게 내겐 행운인 거다.
-촬영기간이 총 37회, 6주로 빠듯했다. 촬영시간을 엄수하는 미국 현장시간 역시 낯선 분위기였을 텐데. =감독님이나 나나 입장이 똑같게 된 거다. 감독님이 헌팅 때 나보다 먼저 시애틀에 간 거 말고는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으니(웃음), 언어나 문화 자체가 다르니 둘 다 현장에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 배우 관계를 떠나서 감독님한테 인간적으로 형으로 의지했던 부분도 분명 컸다.
-김태용 감독이 안 그래도 현빈씨와의 어색한 기억(?)을 털어놓더라. 현빈씨가 워낙 숫기가 없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하려고 덤볐다가도 잘 안되고, 감독님 역시 비슷한 성격이다 보니 유머러스한 시도가 어색함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들었다. (웃음) =맞다. 감독님과 내 스타일이 비슷하다. 말투도 느리고 조곤조곤하고. 둘이 라이브바에 가서 맥주도 마시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우리끼리 하도 대화를 많이 하니 류성희 미술감독님이 둘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비밀리에 하냐고 핀잔을 줄 정도였다. (웃음)
-낯선 현장이 주는 어려움만큼 특별한 경험이기도 했겠다. =거의 연극 만들듯이 영화를 한 것 같다. 실제로 연극 연습하는 극장을 빌려서 리허설하듯이 대본 연습을 하기도 했다. 리허설하면서 동선까지 체크하고, 신마다 하나하나 만들어갔다. 대사가 영어로 진행되다보니 세심하게 체크를 해야 했다. 한국어 대본을 영어 대본으로 만들어 수정하고, 그걸 감독님과 스크립터와 함께 영어로 맞춰보고, 또 그걸 다시 한국어로 해보고 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언어마다 뉘앙스가 달라지니 그 느낌을 조율해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러니 내가 안 반해?
-드라마는 끝나도 ‘주원앓이’는 여전히 뜨겁다. 그 누가 현빈의 노래가 아이돌 가수를 제치고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는 사태를 예견했겠나. =그러게. (웃음) <시크릿 가든>이 잘됐으니 말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개봉하는 영화들도 달리 해석되거나, 시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무얼 하든 ‘현빈’이 수식어가 되면 통하는 시기다. 현빈에게 쏟아지는 이토록 뜨거운 온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2005년 여름의 경험이 있다. 다 같은 배우라고 해도 쉽게 찾아오지 않을 인생의 정점이 두번이나 찾아왔다. =정말로 그때 경험이 굉장히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이 뜨거운 관심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금방이다 내가 봤을 때는. <시크릿 가든>에 한해서가 아니라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다. 한 작품에 보내는 대중의 반응의 기간이 점점 더 짧아지는 것 같다. 영화든 드라마든 이야기의 여운이 주는 기간이 지속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 즉각적으로 바뀌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나오는 시대다. 대체할 것이 생기면 금세 관심이 다른 쪽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내 이름은 김삼순> 때는 그저 좋았을 뿐이다. 너무 갑작스러운 인기였고 얼떨결에 그 분위기를 받아들이는 게 내가 한 전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상황을 즐기는 여유, 어느 정도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 수 있을 정도는 됐다.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이른바 ‘뜨는 배우’가 되고 나서 한 선택이 모두 성공적인 건 아니었다. ‘진헌’이와 같이 까칠한 매력으로 승부를 본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으로 흥행에 고배를 마시면서, ‘현빈 효과’가 실추된 기억도 있다. 같은 선상에서 보자면 지금도 역시 정점에 서 있다는 불안이 있지 않나. =아니다. 그런 불안은 전혀 없다. 그건 당연한 순리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인기가 지금까지 이어져왔으면 어쩔 뻔했나. (웃음) 생각만 해도 그건 아니지 않나. 나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마찬가지일 거다. 무수한 작품이 대중의 선택을 받고 배우들이 그 캐릭터로 인기를 누린다. 그런 상승기가 있다면 또 반대의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이 일을 하면 겪을 수밖에 없는 결과이다.
-‘삼식이’가 현빈을 규정하던 꼬리표였던 시절이 지난 지 오래다. 현빈의 이후 행보를 정리해보면 이상적인 ‘실장님’에서 벗어나기 위한 무수한 노력들의 발로처럼 보인다. =<내 이름은 김삼순> 끝나고 나서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모두 로맨틱코미디였다. 부유한 집안의 능력있는 남자 말이다. 내가 그걸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이미 했으니까. 재벌 2세, 물론 파고들면 그 안에서도 다양한 결을 가진 또 다른 재벌 2세를 연기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난 그게 싫었다. 해본 걸 다시 하느니 이제 연기자로서 보여줄 수 있는 다른 걸 해보자 싶었다. 현빈이란 배우가 줄 수 있는 이미지를 바꿔봐야지 하고 결심했다.
-최근의 행보로 볼 때, <시크릿 가든>의 ‘주원’을 선택한 건 의외다. 앞서 말했듯이, 노희경 작가의 <그들이 사는 세상>에선 현실적인 고민을 앓는 PD였고, <나는 행복합니다>에선 자기 파괴적인 캐릭터로 연기 변신을 시도해왔다. 주원은 어느 모로 보나 ‘실장님’으로부터의 도피 행로에 반하는 캐릭터다. 남녀가 바뀌는 판타지 컨셉 역시 무리수가 따르는 설정이었다. =<시크릿 가든>은 오히려 그 부정적인 면들 때문에 선택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얼핏 납득하기 힘든 드라마의 판타지 요소 역시 좋게 받아들여지더라. 왜냐하면 <시크릿 가든>을 선택한 건 단순히 이 작품 하나만의 영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왜 흥행작이 없냐, 스타성에서 너무 부진한 거 아니냐라는 충고와 부정적인 견해들을 보였더랬다. 나 역시 몇년 전부터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로맨틱 멜로 장르의 이상적인 남성이야말로 다른 누구도 아닌 현빈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였다. =그런데 난 오히려 인기와 상관없이 다른 고민이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팬들이 원하는 건 하지 않고 말이다. 내가 만족할 작품을 해야 하나, 아니면 팬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작품을 해야 하나, 이런 원론적인 고민에 돌입한 거다. 팬들에게 만족을 주려면 전에 봤던 모습을 다시 보여줘야 했다. 그게 틀린 방법은 아니지만 똑같은 걸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똑같은 역할을 하게 되더라도 그간 내가 배우로서 다양한 경험을 해왔으니 조금은 다른 캐릭터,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생각해보니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로 팬들에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 이제 밝은 걸 한번 해보자 하는 상황에서 <시크릿 가든>을 만나게 됐다. 시기가 맞은 거다.
-어떤 경우도 흥행을 담보할 순 없지 않나. 지금의 인기도 예상외일 텐데. =그건 좀 다르다. 난 이 작품이 상업적인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건 상업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모든 작품이 마찬가지다. 그렇게 생각하고 하더라도 대중이 선택하지 않으면 많이 보지 않으면 아트가 되는 거다. 사람들의 선택, 숫자가 가질 수 있는 영향에 따라 개념 자체가 달라질 수 있는 거다.
-현빈에게 있어 셈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입증된다. 예를 들면 tvN의 <택시>에 출연한 건 화제였다. 실과 득을 따질 때 친분이 앞서는 건 이 업계의 매커니즘으로 볼 땐 분명 특이한 계산법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선배들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난 내 또래보다 형들과 더 친하게 지내는, 친화력이 있는 편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연극을 하면서 작품은 사람들끼리 만든다는 걸 배운 것 같다.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아는 모든 선배에게 난 연기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많은 걸 배웠다. 그들 각자만의 매력, 각자만의 연기론이 있으니 누구 한명이 멘토가 될 수 없다. 각자에게 다 다른 면들을 보고 배운다. 욕심쟁이 같지만, 그런 면에선 이기적이어야 한다. 선배들이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끔 넌지시 한두번 연기에 대해, 사람들은 대해, 어떻다라고 말할 때가 있다. 그걸 캐치해서 받아들이면 내 거가 되는 거다.
-자의든 타의든 군생활로 인해 이제 2년여의 공백기를 가지게 됐다. =기대된다. 군대가 기대된다기보다는 내 것을 찾으러 가는 기분이다. 연기를 하면서 20대를 ‘배우 현빈’으로 살았지만, 사람 현빈으로서는 살지 못했다. 늘 이 작품을 할까, 팬들은 어떤 반응을 할까, 이런 거에 신경 써왔지 내 개인의 것에 대해선 무관심했다. 앞으로 2년 동안은 그러니 철저히 나 자신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온 거다. 그런 부분에 대한 기대가 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지금 타이밍에 군대를 간다는 거에 아쉬움을 전한다. 나도 아쉬움은 있다. 그런데 인기나 스타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다. 이제 조금씩 연기에 재미를 느끼고 있는데 그걸 끊어내고 간다고 하니 아쉬운 거다.
20대를 한땀 한땀 땀흘린 배우라고 내가!
-아니나 다를까,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친구, 우리들의 전설>부터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 <만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등 그간 무리다 싶을 정도로 쉬지 않고 작품을 해왔다. 강요해서 소화해낼 스케줄은 아니었다. =힘들게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연기를 진지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일년에 거의 세 작품씩 하고 있다. 신인 시절이 지금보다 작품 수가 더 적었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에 다른 배우들이 한 작품을 끝내고 또 다른 작품 들어가는 걸 보고 굉장히 신기했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그런 생활을 하고 있더라. 욕심이 생겼다. 연기, 작품 모두 놓치고 싶지 않게 된 거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현빈이라는 배우의 1막이 끝났다. =분명한 건 지금이 마침표는 아니라는 거다. 한 작품, 한 작품 모두 다 조금씩 배워왔다. 그동안 쌓아올린 많은 것들이 <시크릿 가든>을 통해서 표현된 것 같다.
-<돌려차기>에 출연한 신인 시절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프라이멀 피어>에서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 다중인격자 연기를 싶다고 했다. 지금도 그 목표는 유효한가. =지금도 비슷하다. 다만 그건 내 연기가 어느 정도 됐다 싶었을 때 하고 싶은 연기다. 그냥 쉽사리 도전하고 싶지는 않다. 군대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연습해 올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입대 전이라면 정리의 시간이 필요할 텐데. 당장 홍보 스케줄과 베를린국제영화제까지 숨쉴 틈이 없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정리한다면 무얼 정리할 건가. =스케줄이 정말 꽉 차 있다. 나 혼자, 가기 전까지 단 며칠이라도 잠깐 떨어져 있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 잠깐이라도 그런 시간이 허락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