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0일 개막하는 제61회 베를린영화제의 포럼부문에서는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한편이 상영된다. 세바스티안 하이딩거의 <카불 드림팩토리>(Kabul Dream Factory, 독일)가 그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영화인 사바 사하르의 삶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사바 사히르가 시쳇말로 진짜 여걸이다. 경찰에다 배우, 제작자, 감독 등을 겸하는 만능인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극도로 열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녀의 활동은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다.
카불에서 태어난 사바 사하르는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기 전 대학에서 연극 활동을 했고, 1988년에는 전국 오픈스테이지 드라마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뒤 그녀가 택한 직업은 경찰관. 1992년 내무부에 배속된 그녀는 내무부 산하 영화/연극 부서에서 경찰관으로 일하면서 극본을 쓰기도 했다. 1999년 샤파크 필름인스티튜트에 입학하여 영화연출 학위를 취득한 그녀는 다수의 단편영화와 연극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탈레반 정권에 의해 영화제작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자 그녀는 가족과 함께 파키스탄으로 이주한다. 2001년 탈레반 정권의 패망 이후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온 뒤 2003년 카불에 자신의 영화사 사바 필름을 설립하였다. 사바 필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이 세운 첫 번째 영화사였다. 그녀는 파키스탄의 ‘랄리우드 영화’의 영향을 받은 상업영화를 주로 만들면서 아프가니스탄의 상업영화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영화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명확하다. ‘아프가니스탄 문화를 새롭게 재건하는 것’이다. 그녀가 만드는 영화는 액션영화, 특히 강한 여성 캐릭터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의 이미지를 바꾸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녀의 시도는 상당한 위험을 내포한다. 2005년 그녀의 첫 번째 장편 <카눈-법>(Qanoon-the Law)이 카불에서 개봉했을 때, 극장주는 경찰을 불러야만 했다. 여성이 만들고, 여성이 주연인 영화, 그런 작품을 여성 관객이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성들의 폭동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 때문이었다. 결국 개봉 첫날에는 남성 관객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카눈-법>의 내용은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결혼한 여성 경찰 라비아가 남편이 마약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남편과 그 일당을 소탕한다는 이야기다. 여성감독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력이 난무하는 이 작품은 여성 관객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흥행에 대성공을 거둔다. 불법 DVD 시장에서는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인기를 능가할 정도였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관객이 <카눈-법>에 열광한 이유는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여주인공 라비아가 이상적인 여성상이기 때문이다. 악당(남성)들을 때려눕히고, 정의를 구현하는 라비아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었던 것이다. 사바 사하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지만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이 영화를 통해 희망을 갖기를 원한다는 말을 했다.
<카눈-법>의 성공에 힘입어 사바 사하르는 2007년에 또 다른 액션영화 <구출>(Nejat)을 만들었다. 양귀비를 재배하라는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시골 마을 사람들을 살해하는 마약조직을 소탕하는 여경찰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 역시 사바 사하르가 주연과 감독을 맡았다. 사바 사하르는 대부분의 제작비를 독일 대외기술협력단과 독일 연방 경제협력개발부로부터 조달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최근까지 해외에 알려진 아프가니스탄 감독으로는 <천상의 소녀>의 세디그 바르막, <대지와 먼지>의 아틱 라히미(프랑스 거주) 정도이다. 사바 사하르의 액션영화가 이들처럼 해외에서 주목받기는 힘들겠지만, 국내 영화산업의 열악한 상황, 여성에게 매우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딛고 대중의 호응을 얻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사바 사하르의 도전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