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참 친절한 책이다. 이 책은 정말 우리 건축과 서양 건축을 함께 읽어준다. 국가와 문화권에 무관하게 건축물에 필수적으로 존재하는 공간, 지붕과 담, 문과 계단을 살피고 그 존재의 이유와 각기 달랐던 건축 개념의 전개 과정을 살핀다. 글에 언급되는 해당 건축물의 해당 공간이 사진으로 제시되어 보기 편한데, 한국 건축물에 대한 자료사진에 비해 서양 건축물 자료사진의 상세함에는 약간 기복이 있다.
어렴풋하게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한국 건축물(이제는 서양식 주거문화에 그 자리를 거의 내어주었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한옥의 구조를 논하기 위해서는 기억보다 상상력을 동원해야 할 판이다)의 구석구석을 들춰보는 임석재의 꼼꼼함은 흥미로운 해석으로 이어지곤 한다. 한옥집에 드나들 때 가장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작은 문에 대해 생각해보자. 옛날 사람이 몸집이 작고 키가 작아서 문이 작았다? 그게 아니다. “아무려면 그 정도 불편한 것도 몰랐을까. 그것이 정말로 문제라면 문을 조금 크게 만들었으면 될 일이다. 이런 크기의 문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는 뜻이다. 문을 드나들면서 몸을 오그리고 수그릴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육체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내 몸의 크기가 이 정도구나 하는 자아 각성을 하루에도 열번씩은 하게 된다. 이것은 곧 자신의 분수를 알게 만드는 훌륭한 스승의 역할로 나타난다.” 툇마루의 절묘한 높이 감각도 화젯거리다. 무릎을 굽히고 걸터앉으면 딱 맞는 높이, 그리하여 앉아서도 서 있는 눈높이를 유지할 수 있는 높이. 그야말로 휴먼 스케일의 비밀이다.
눈이 가장 즐거운 대목은 13장 ‘친자연과 낭만주의’다. 자연이 곧 건축이 되는 아름다움의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건물과 인간의 관계, 무엇보다 종교관이 달랐기 때문에 서양 건축물은 다른 양상으로 발전해왔지만 현대 건축에서는 동서양의 간극이 좁아졌다는 사실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