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지 않고 섹스만 하는 게 가능할까?’ 캐리(<섹스 앤 더 시티>)의 노트북에 쓰인다면 한회분 에피소드로 딱인 질문이다. 이른바 <친구와 연인사이>의 ‘관계’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성친구 엠마(내털리 포트먼)와 아담(애시튼 커처). 여섯살 때부터 드문드문 알고는 지냈지만, 물론 사귀는 사이는 아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20년 뒤, 몇번의 우연한 만남 이후 사건은 시작된다. 아버지에게 전 여친을 뺏긴 뒤 이성을 상실한 상태의 아담은 만취 상태로 휴대폰 목록에 있는 모든 여자에게 전화를 걸고, 엠마와 충동적인 섹스를 하게 된다. 일부일처제를 믿지 않는 의사 엠마는 방황하는 아담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우리 사귀지는 말고 섹스만 해볼까?”
<친구와 연인사이>는 연애를 하면 지극히 당연시되는 과정을, 테이프를 넣고 뒤로 돌리듯 역으로 진행한 실험이다. 호감에서 시작돼 서로를 더 깊이 알고, 결국은 사랑에 이르는 보통의 과정을 밟는 대신, 엠마와 아담은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키스부터 교환하고 관계를 정립하려 든다. 구질구질하게 사랑 따윈 하지 말고 철저하게 몸의 요구에 따를 것! 영화는 두 남녀의 이 깔끔한 합의가 치기나 이상에 불과했다는 걸 증명하는 두 시간 동안의 온갖 노력이다. 보통의 수순을 따른다면 순수하게 축복해줄 만한 사건이지만 순서가 바뀐 탓에 불건전한 게임이 돼버리고, 그 결과 둘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관계를 재확인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이 과정이 연애커플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큰 밑그림으로 보자면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적인 밀고 당기기 형식이다. <식스 데이 세븐 나잇>의 아이반 라이트먼 감독은 가벼운 연애담을 통해 젊은 남녀의 섹스관을 되짚어보려 한다. 그리고 결국 핵심은 ‘사랑’에 있다는 순수한 결론을 도출해나간다. 어쨌든 결과를 떠나 이 ‘역추적’은 컨셉으로 볼 때 역시 불건전하긴 한가보다. 보통 이 장르에서 용인될 법한 수위의 노출임에도 순서를 바꾸어 전면에 부각한 결과,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