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이야. 혼자서 16명을 원터치로….” 꽃피는 춘삼월이 오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이런 일성이 터져나올지도 모르겠다. 조희문 위원장의 해임으로 인한 영진위 신임 위원장 공모에 17명의 영화계 안팎 인사들이 뛰어들었다. 17 대 1.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영진위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위원장을 공모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 이전의 두 차례 공모에선 “10명 내외”에 그쳤다. 강한섭, 조희문 전 위원장들의 파행 행보 때문일까. 언론도 누가 출사표를 던졌는지 일찌감치부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명혁 현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이강복 전 CJ엔터테인먼트 대표, 황기성 전 서울영상위원회 위원장, 정재형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 등이 언론의 도마에 오르내리는 대표 인사들이다. 공모 접수가 끝났지만 17명의 면면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는 상황.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는 “누가 지원했는지 알려줄 수 없다”며 입을 봉했다. 영진위 인사 담당자는 “요즘 접수자가 누구인지 묻는 전화를 많이 받는다. 물론 예외없이 노 코멘트다. (일부 언론에서 언급한 14인의 인사 중엔) 접수하지 않은 인사도 끼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영진위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관련 담당자를 제외하고서는 누가 공모 신청서를 냈는지 모른다”며 “소문으로만 치면 17명이 훨씬 넘는다”고 말했다.
굳이 17명을 일일이 열거하며 누가 영진위 위원장으로 적절한 인물인지 품평할 수 있는 상황이나 입장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많지 않다. 다만 17명씩이나 영진위 위원장 공모에 응한 이 상황이 더 궁금하다. 영진위에 대한 관심이 언제부터 이렇게 높아졌을까. 혹시 영진위가 아니라 영진위 위원장에 대한 욕심은 아닐까. 쉽게 단정할 순 없다. 다만 언론에 나도는 인사들의 이름을 사정 아는 이들이 훑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수장들의 잘못된 결정 혹은 비상식적인 선택으로 인해 영진위가 번번이 헛발질을 할 때, 이러다간 영진위가 없어질지 모른다고 영화계가 들썩일 때, 17인의 후보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영진위 정상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이들은 왜 영진위 위원장 접수에 응하지 않았을까. 반면 후보자 명단에 “영화계의 뜻도 전달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정부의 입맛도 맞추지 못한” 전 위원장들과 ‘함께’ 혹은 ‘그 아래서’ 일한 이들의 이름은 왜 그리도 많은가. 자기 실수로 잃은 외양간이지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면 책임지고 직접 나서서 고쳐보겠다는 선의로 받아들여야 할까.
후보자 명단을 공개한 언론 보도가 맞다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장 중 한명이 임기를 남겨두고 공모에 응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한 영화인은 “법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가능했겠지만 도의적으로 쉽게 용납할 수 없다”면서 “혹여 누군가가 위원장 후보로 떠밀었다고 하더라도 거절했어야 옳다”고 잘라 말했다. 최근 정병국 의원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한 정부로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원칙 아닌 원칙을 이참에 버려야 한다(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영진위 임원추천위원회가 서류심사, 면접을 거쳐 3∼5인의 인사를 문화체육관광부에 추천하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위원장을 임명하게 되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임명권자이지만 항상 그의 뜻대로 되진 않는다. 한 정책 관계자는 위원장 최종 낙점 시 고위층의 인사라인에서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이건 전례를 보면 안다. 과거 두 위원장들이 여론으로부터 극단적인 ‘비토’를 당한 건 영화계의 뜻을 분명하게 정부에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밀어준 정부로부터까지 미운 털이 박힌 건 공공 조직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상식조차 어겼기 때문이다.
“정책 조율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 영화계 안팎에서 신망이 높으면 좋겠다. 자율성을 잃고 시키는 대로 하는 영진위를 정상화할 의지를 갖고 있으면 좋겠다. 정부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면 더더욱 좋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바랄 순 없다. 딱 하나만 꼽자면, 자기 욕심 채우려고 분란을 일으키고 그 때문에 영진위가 훼손되는, 문제의 인물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영진위 직원의 말이다. 삼세번이라 했다. 이번에도 제대로 못 뽑으면, MB 정부의 영화정책은 낙제가 아니라 빵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