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실감난다. 겉보기엔 품위가 넘치나 속은 썩어 문드러진 대기업 가문도, 좌파도 우파도 꺼리는 폭로 전문 시사 월간지도. 비판적 잡지 <밀레니엄>의 정의파 기자 미카엘 블룸크비스트는 우연히 스웨덴 대표기업 방예르 가문의 미스터리를 추적하게 된다. 몇 십년 전 방예르 가문이 사는 섬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입구가 봉쇄된 날, 후계자로 지목될 영리한 소녀 하리에트가 실종되었던 것이다. 미카엘은 하리에트 사건을 추적하며 대기업 가문에 드리워진 그늘과 마주한다. 가문의 형제들이 차례로 나치 세력에 가담했던 것. 작가 자신이 미카엘처럼 비판적 저널리스트로서 평생 극우파에 맞서 살아간 전력 덕분인지 이야기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전개된다. 또 후반부는 미스터리를 한방에 풀며 화끈한 재미를 보장한다. 미카엘과 한팀을 이루는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가장 매혹적인 캐릭터다. 그녀는 비쩍 마른 몸을 문신과 피어싱으로 휘감은 펑크족 소녀로, 정신장애 판정을 받고 후견인에게 통장을 빼앗기다시피 했다. 그러나 천재 해커인데다 본 것은 무엇이든 정확하게 기억하는 능력이 있어서 자신의 취약한 처지를 스스로 방어한다. 일본 라이트 노벨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 자폐적 소녀가 악당들을 처치하는 장면은 007 시리즈 뺨치게 통쾌하다. 그녀가 성범죄를 단호하게 ‘여성증오 범죄’로 정의 내리는 부분 또한 속 시원하다. 가해자의 가학적 속성은 그녀에게 절대 용서받지 못한다.
외국에서 잘나간다고 한국에서도 그러란 법 없지만 <밀레니엄> 시리즈를 읽으면 이 말이 절로 나온다. 어째서 이 재미있는 시리즈가 아직도 대박나지 않은 거지? ‘어른들의 해리 포터’란 별명이 딱 어울리는데? 이 시리즈를 노후보장보험으로 여기고 써나갔지만 3부까지 탈고한 뒤 며칠 만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저자의 사연이나 그가 남긴 인세를 둘러싸고 가족과 애인간에 재판이 진행 중인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책 자체도 드라마틱한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