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의 픽션
<저지대> 헤르타 뮐러, <먼 별> 로베르토 볼라뇨, <달리기> 장 에슈노즈, <밀레니엄> 스티그 라르손
좋았던 책이 많긴 했는데, 읽은 순간 받은 충격이라는 측면에서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를 넘어서는 책은 없을 것 같다. 독일어와 독일 문학에 대한 나의 편견(독일 음악은 듣겠는데 독일 소설은 도무지 읽히지 않았다)을 깬 책이고, 문장으로 완성해가는 이미지의 구축법이 마음에 꼭 들었다. 볼라뇨의 <먼 별>과 에슈노즈의 <달리기>는 특이한 주인공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원서로 읽은 <잉글리쉬 페이션트>도 빼놓을 수 없다. 막판에 문장 하나로 콸콸 운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미스터리 소설도 참 많이 읽었는데 읽은 편수에 비해 ‘이거다’ 싶은 책은 만나지 못했다(너무 많이 읽어서 불감증 걸렸나). <밀레니엄>은 책과 작가에 얽힌 뒷이야기도 워낙 흥미진진. 연애소설쪽은 메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의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독보적인데, 서간문 소설이 얼마나 감질맛나게 로맨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위험한 관계>처럼 무서운 장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야마다 에이미의 <돈 없어도 난 우아한 게 좋아>는 이른바 ‘깨알 같은 재미로 가득한 책’이다. 나이든 남녀가 연애하는 소설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게 아니라) 이렇게 귀여울 수도 있구나 하고 살짝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하지만 그들이 겪는 갈등의 내용은 역시 나이든 남녀스럽다).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한 나오미 노빅의 <테메레르>도 연애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내게 필요한 건 남자가 아니라 용이었다!) 책 읽다가 너무 두근두근해서, 지하철에서 내릴 곳을 네번이나 놓쳤다. 만화책으로는 요시다 아키미의 <바닷마을 다이어리1>.
2010년의 논픽션
<축의 시대: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 카렌 암스트롱, <음식은 자유다> 지닌 로스, <아빠는 경제학자> 조슈아 갠즈, <너의 시베리아> 리처드 와이릭, <라이프: 카모메 식당, 그들의 따뜻한 식탁> 이이지마 나미, <위건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2010년 읽은 책을 돌이켜보면 픽션보다는 논픽션이 더 흥미진진했다. <축의 시대> <위건부두로 가는 길> <왜 말러인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 <스페인 내전> 모두 가까이 두고 읽기를 권한다. 인문학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은 책들이 인기를 끄는 세상이지만, 요점정리만 읽다보면 정작 중요한 ‘맥락’과 ‘응용능력’을 잃기 쉬우니까. 유머로 따지면 <아빠는 경제학자>가 압도적이고, 산문의 아름다움으로 치면 <너의 시베리아>를 놓쳐서는 안된다. <라이프: 카모메 식당, 그들의 따뜻한 식탁>은 외국 유학간 후배들을 위한 선물용으로 열심히 산 책. 따라하기 쉬운 일본 가정요리 레시피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