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별장에서 느닷없는 난도질이 시작된다. 얼마 전 엄 사장(김병춘)의 회사에서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씨(이경영)는 시골별장으로 휴가 온 엄 사장과 가족들을 한명씩 급습, 신체를 절단하고 납치한다. 엄 사장과 가족들을 별장에 가둔 김씨는 엄 사장에게 사과를 요구하지만 엄 사장은 김씨가 열심히 살지 않은 탓이라며 이를 거부한다. 분노한 김씨는 엄 사장과 가족들에게 ‘열심히’ 이곳을 탈출해보라며 조롱하고 극한상황에 몰린 가족들은 서로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필사의 탈출이 실패하고 모든 것이 김씨의 의도대로 흘러가는가 싶더니 백숙 배달부의 등장과 함께 영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스릴러가 되고 싶었던 코미디’란 문구에서처럼 <죽이러 갑니다>는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코미디와 스릴러의 이종교배를 시도한다. 기발한 착상이나 재기 넘치는 시도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저예산영화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지만 동시에 걱정스럽기도 하다. 착상이 매끄러운 만듦새로 이어지지 못할 때 불협화음에 그치는 것을 종종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죽이러 갑니다> 역시 이러한 우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다리를 자르고, 귀를 뜯어내고, 팔을 쇠톱으로 써는 참혹한 신체훼손을 전시하더니 이를 비정규직 노동자가 직장에서 ‘잘린’ 것과 연관지어 비정규직 문제를 지적한다. 말장난을 연상시키는 <죽이러 갑니다>의 블랙코미디는 스릴러적인 분위기 아래 몇몇 지점에서 진지한 메시지와 결합하여 인상 깊은 풍자로 승화되기도 하지만 문제는 지나친 욕심에 비해 상황과 이야기의 연결이 정교하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죽이러 갑니다>의 느슨하고 거친 장르 접합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사운드의 활용이다. 이 영화에서 스릴러와 코미디의 구분은 철저히 음악과 사운드에 의존한다. 어디서부터 웃고 어디서부터 긴장해야 할지를 정확하고 친절하게 지시하는 사운드의 기계적 활용은 스릴러·슬래셔·코미디적 요소가 결합이 아닌 나열에 불과함을 방증한다. 거기에 더해 전반의 비정규직 문제나 경제력에 의한 가족 내 서열화, 후반의 가족 이기주의 등 너무 많은 메시지는 온당히 누려야 할 장르의 쾌감마저 질식시켜 살해한다. 그나마 배달부 등장 이후의 활극 같은 난장이 펼쳐지며 성공적인 코미디가 될 수 있을까 기대하게 만들지만 아무래도 뒷심이 부족하다. 해고당한 노동자 김씨의 절규처럼 ‘열심히’ 한다고만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