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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유례 없이 괴로운 지구 멸망기
김도훈 2011-01-18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

<멜랑콜리아>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이라면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해피엔딩은 없다. 심지어 신작 제목이 ‘우울증’을 의미하는 <멜랑콜리아>라면 해피엔딩은 약에 쓰려도 없을뿐더러 정말로 무시무시한 엔딩을 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심지어 라스 폰 트리에는 그간 신작이 “사이콜로지컬한 재난영화”라느니 “세상의 종말에 관한 아름다운 영화”라느니 떠들어댔다. 재난과 종말이라는 단어가 메타포라고 생각했다면, 틀렸다. <멜랑콜리아>는 정말로 지구가 종말하는 이야기다. 라스 폰 트리에가 유일하게 공개한 저 위의 말도 안되는 스틸 좀 보시라.

영화의 주인공은 자매다. 하나는 우울증에 걸린 여자(커스틴 던스트), 또 하나는 평범한 성격의 여자(샬롯 갱스부르)다. 우울증에 걸린 자매가 결혼식 이후 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동안 거대한 행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지구는 멸망한다. 라스 폰 트리에는 아예 영화의 첫 장면이 지구의 종말이라고 최근 스웨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정말 흥미진진한 것은 무엇이 일어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일어나느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영화는 지구가 종말하는 걸로 시작하고, 그 뒤에 우리는 진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이 우울한 정신병적 천재(혹은 사기꾼)가 평범한 재난영화를 만들었을 리는 없다. 어쩌면 이 모든 건 커스틴 던스트와 샬롯 갱스부르를 스크린 속에서 고문하고 싶은 감독의 야망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읽어도 <멜랑콜리아>가 어떤 영화일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고? 몇 가지 단서가 있다. 라스 폰 트리에는 “<안티크라이스트>만큼 보기 좋은 영화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안티크라이스트>보다 더 보기가 힘들다고? 커스틴 던스트는 “시적인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역시 속아서는 안된다. 그녀는 곧 이렇게 덧붙였으니까. “(라스 폰 트리에가) 여자를 고문하는 것에는 어떤 시(Poetry)가 있다.” 올해 칸영화제가 이렇게 두렵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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