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신문, 방송 보기가 겁났다. 살처분되는 돼지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방역은 제2의 국방”이라던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제역 대책을 전한 김성훈 당시 농림부 장관의 글을 보면서 거듭 가슴 한쪽이 아팠다. 구제역 발생 보고를 받자마자 대통령이 내린 지시는 “방역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피해 농가에 대한 보상은 기대 이상으로 파격적으로” 행하라는 것이었다. 민·관·군의 협력을 재빠르게 끌어낸 결과 살처분된 가축은 2200여 마리에 그쳤고, 우리나라는 국제수역사무국으로부터 구제역 퇴치를 가장 성공적으로 한 나라로 꼽혔다.
참으로 누가 대통령인가는 중요하다. 재앙 수준의 구제역을 잡느라 쉼없이 일하던 공무원들이 쓰러지고 반복되는 살처분 과정에서 수의사들조차 정신적 쇼크를 감당하기 힘들어 한다는 소식으로 더욱 흉흉하던 날 지금의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보고대회’에 참석했다(그렇다. 아직도 G20이다). 공영방송은 G20 봉사 활동을 한 젊은이들을 스튜디오에 불러놓고 ‘글로벌 리더’ 운운하며 말을 시켰다. 요지는 우리 젊은이들 이렇게 똑똑해서 글로벌 경쟁력 있고,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로컬스러운’ 행사요 방송이었다. 바로 사흘 전 틀에 박힌 학점 관리(특정 기준에 못 미치면 다음 학기 0.01점당 6만여원씩 돈을 더 내는 식의 경악스런 등록금 차등제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에 애를 먹던 카이스트 학생이 목숨을 끊었다. 다른 이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학업 부진, 특히 영어로만 진행되는 수업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증언이 쏟아진다. 총장은 해외 출장을 이유로 영결식에 불참했다.
살아가는 것들이, 마땅히 살아 있어야 하는 것들이 죽어가는 데 책임은커녕 연민조차 갖지 못하는 ‘경쟁력’은 단언컨대, 악이다. 그 기준이라는 ‘글로벌’의 실체는 얼마나 모호하며 획일적인가. 나아가 배타적인가. 어학, 구체적으로는 영어 잘하면 장땡이다. 이는 부모 잘 만나 영어권 나라 물 먹고 살뜰히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관리받아온 아이들을 위한 ‘맞춤형 환상’일 뿐이다. 사고의 표현 수단인 언어가, 사고 자체를 압도해버리는 이 기막힌 현실 앞에서 ‘로봇영재’로 선발된 학생조차 ‘수업 루저’가 되어버린다. 이게 과연 교육인가.
다시는 대한민국의 돼지로 태어나지 말거라. 다시는 대한민국의 학생으로 태어나지 말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