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금이 들어와야 실감이 나지. 지금은 빚쟁인데.” 흥행작을 터트린 제작자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넬 때면 흔히 듣는 말이다. 극장의 부금 정산 시기는 통상적으로 “해당 영화의 종영시점을 기준으로 45일 이내”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가 종영한 뒤 ‘45일이 되어야’ 배급사에 돈이 들어온다. 투자자와 제작자는 더 기다려야 한다. 이들이 배급사로부터 제 몫을 돌려받기까지는 종영시점 기준으로 ‘90일’은 족히 걸린다. 투자배급사와 제작사들은 그동안 “관객이 극장 요금을 후불하는 것도 아닌데 극장이 수익을 왜 제때 돌려주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를 내왔고, 그때마다 극장은 ‘관행’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버텨왔다. 그런 점에서 최근 롯데시네마가 ‘월 단위 정산’ 원칙으로 선회한 것은 정말이지 뜻밖이다.
롯데시네마는 1월12일 보도자료를 내 “부금 정산 시기를 획기적으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영화 종영 이후 45일 이내 부금을 지급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부금을 월 단위로 정산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방침은 롯데시네마 직영관(32개 사이트, 240개 스크린)에서 2011년 1월1일 이후 개봉한 영화부터 적용된다. 롯데시네마 임성규 과장은 “‘다른 유통 산업과 달리 영화는 왜 월 정산 방식을 따르지 않느냐’는 손광익 대표의 지적이 있었다. 원칙없는 관행 대신 룰을 새로 만들어보자는 차원에서 내부 논의를 거쳐 이같이 결정했다”면서 “자금력이 충분한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영화가 종영되기 전까지 자금을 받을 수 없었던 중소 규모 배급사들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월 단위 부금 정산’ 도입은 영화계 자금 흐름 속도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싸이더스FNH 이화배 배급팀장은 “자금 회수 기간이 짧아지면 배급사와 투자사, 배급사와 제작사 사이의 부금 정산 기간 또한 단축될 것”이라면서 “투자배급사는 현금 유동성 확보를 통해 좀더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동시에 자금 계획 또한 정확하게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영화진흥위원회 류형진 연구원은 “정확하게 따져봐야겠지만 롯데시네마의 연간 매출 규모를 감안할 때 월 정산 방식 도입은 700억원 이상의 자금이 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영화계에 유입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영화사 아침의 이정세 대표는 “영세한 제작사는 한달 사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예전에 영화가 흥행이 돼 업체들에 밀린 돈을 줘야 하는데 당장 줄 돈이 없어 4개월 뒤에 정산하면 꼭 갚겠다고 하고 다른 곳에서 돈을 빌린 적도 있다”면서 “자세한 배경은 모르겠지만 극장이 부금을 홀딩하지 않고 단기간에 수익을 정산해준다는 마인드 자체는 상호 배려의 마음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관심은 롯데시네마 이외 멀티플렉스들의 반응으로 모아진다. CGV 이상규 홍보팀장은 “회사 입장에서 이와 관련한 특별한 논의가 진행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CGV든, 프리머스든, 메가박스든 ‘월 단위 부금 정산’을 외면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극장 관계자는 “다른 멀티플렉스들이 롯데시네마와 똑같이 월 단위 부금 정산을 도입할지는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극장들이 기존 관행을 마냥 고수할 수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고 말했다. 롯데시네마가 그동안 “절대 불가”라는 부금 지급 방식을 변경했다는 사실은 투자배급사가 다른 극장들에도 ‘관행 개선’을 요구할 근거이기도 하다. 영화계 안팎에서는 외국영화와 동등한 수준의 한국영화 부율(극장과 배급사간 수익분배율) 조정, 교차상영 금지 등 해결점을 찾지 못해 묻혀 있던 이슈도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롯데시네마의 ‘통큰’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