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젊음이 좋다고들 해도 낙엽 굴러가는 소리에 까르르 웃는 감성이 좋아도 결코 과거로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번만은 예외다. 요시다 아키미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시리즈를 보면 과거 어딘가로 돌아가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3권까지 나온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네 자매가 주인공이다. 이십대 후반인 첫째 사치, 술버릇과 남자운이 고루 사나운 둘째 요시노, 그늘이라고는 없이 활달한 성격의 셋째 치카, 그리고 이복동생인 스즈.
사치, 요시노, 치카 세 자매가 아버지의 부음을 듣게 되는데, 그들의 아버지는 자매들이 초경을 하기도 훨씬 전이던 때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 그들을 버렸다. 어머니도 재혼을 이유로 자매들을 두고 떠나 외할머니와 함께 성장한 터.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보니 현재 부인은 아버지가 바람 피우던 여자와 또 다른 여자다. 이혼의 이유가 되었던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스즈는 갈 곳이 없어지고, 중학생인 스즈를 자매들이 돌보기로 한다. 마치 여자 기숙사처럼 네 여자가 그렇게 모여 살게 된다.
무대는 도쿄 근교, 우리에게는 <슬램덩크>의 무대로 더 잘 알려진 가마쿠라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의 풍경이 시종일관 아름답게 존재증명을 하는데, 네 여자의 삶과 사랑을 다채롭게 그리기에 이보다 더 좋은 무대가 있을까 싶다. 서핑을 하는 청년들의 모습이나 뒷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신사가 있는 동네 풍경, 남녀 학생이 함께 뛰는 중등부의 축구부, 지역 명물인 대불상과 관음상이 실은 서로 사귀는 사이라는 학교의 전설까지, 아기자기한 재미가 솔솔 새어나온다. 하지만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네 여자가 한지붕 아래서 성장하는 과정이 순탄하기만 할 리는 없다. 그중에도 특히 ‘좋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남자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아이러니를 알게 되는 대목은, 어른들만이 아는 별볼일 없는 삶의 진실 같은 것이려나. 그러는 사이에 벚꽃이 피고 지고, 매실주를 담그는 계절이 온다. 많은 사건이 막내 스즈의 눈높이에서 그려지는데, 그 덕에 큰일도 별것 아닌 일도,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매번 큰 의미로 전달된다. 그렇게 매 순간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옆에 숨겨놓고 몇번이고 되풀이해 읽고 싶은, 읽고 나면 엄마미소를 짓게 되는 만화.
ps. 요시다 아키미의 <길상천녀1, 2>도 최근 출간되었다.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때문에 늘 피해자가 되고, 결국은 생생하고 질척질척한 방식으로 죽음을 몰고 다니는 소녀의 이야기. 등장인물들이 다 예쁘다는데 보는 사람은 시종일관 불길한 느낌을 갖게 하는 여주인공을 요시다 아키미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