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래픽 노블을 단 한번만 읽는다는 것은 오만이다.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매우 지적인 그래픽 노블이기 때문이다.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이어 원>에서 그림을 담당한 일러스레이터이자 만화가인 데이비드 마추켈리는 첫 그래픽 노블 작품인 <아스테리오스 폴립>으로 “만화계의 제임스 조이스”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만화계 최고상인 아이스너상, 만화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하비상을 석권했다.
제목과 같은 이름의 주인공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그리스계 미국인으로, 자신이 설계한 건물이 실제로 지어진 적이 단 한번도 없는 ‘페이퍼 건축가’이며 인정받는 건축학과 교수인데 좀 재수없는 인간이다. 50살 생일에 번개로 인한 화재로 집을 잃은 폴립은 무작정 버스에 오르고 어포지(Apogee: 극점)라는 곳에 도착한다. 자동차 정비공이 된 폴립은 헤어진 아내 하나와의 일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아스테리오스 폴립>의 이야기 구조는 폴립의 절망, 회상, 깨달음, 재회, 행복 혹은 불행순으로 진행된다. 이 흐름을 이끄는 힘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상징과 은유. 저자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파네스부터 현존하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까지 동원한다. 동시에 다양한 역사적 인물과 사건, 예술작품들을 인용한다. 두 번째는 만화 고유의 장치들. 특히 주목할 것은 레터링(lettering)인데, 저자는 모든 등장인물에게 고유한 서체를 부여했다(이 부분은 한국어판에도 적용되었다). 또한 캐릭터의 감정에 따라 서체와 그림체에 변화를 모색한다. 이를테면 이성적인 폴립은 기하학적 푸른 선으로, 감정적인 하나는 거칠고 붉은 데생으로 묘사한다.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지적인 레퍼런스와 정밀한 만화적 장치라는 두 기둥으로 지탱된다. 어느 하나를 놓친다면 폴립이 신봉했던 ‘균형’을 잃는 셈이니 <LA타임스>의 충고처럼 적어도 두번은 읽기를 권한다. 게다가 비싸고 두꺼운 책이니까.